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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19. 2023

M2의 마음 2

요즘 현우의 최대 관심사는 새로운 이성을 만나는 것이다. 인류의 평균 수명은 100세를 훌쩍 넘어 150세 가까이 된 지가 오래됐다. 노화를 지연시키는 과학기술은 생각보다 더디게 발전된 반면, 생명을 연장하는 의술은 기대보다 크게 발전했다. 큰 사고를 당하는 소수를 제외하고 단명하는 사람은 없는 시대이다. 의술의 힘을 빌어 자연사하게 된다면 평균 수명이 150세를 훨씬 뛰어넘을 수 있지만, 체내에 여러 기계장치를 삽입한 채 노쇠한 몸으로 버티는 삶이 그리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150세 전후로 안락사를 선택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 풍토도 많이 달라졌다. 인류는 이렇게 긴 세월을 한 명의 배우자와 살아본 역사가 없다. 그러한 삶이 인간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는 동안 결혼을 두 번, 세 번 또는 그 이상 하는 것이 일반적이 됐다. 평생 동안 결혼을 한 번만 한 사람들은 헤어지고 다시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이지 죽을 때까지 한 사람과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계에 따르면 0.2%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 인류의 첫 번째 결혼은 언젠가 이혼을 한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화려한 결혼식, 잘난 사람과의 결혼, 높은 수준의 라이프 스타일, 결혼이 갖는 경제 공동체로서의 성격, 상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이기심,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맞물려 과시성 소비심리와 같은 개념으로써 결혼제도가 여전히 남아있지 않나 싶다.현우의 나이는 마흔 다섯이다. 11년 전 입사 동기였던 한 여성과 결혼했고 6년을 살다 이혼했다. 이혼 후 5년 정도 여러 여자들과 가벼운 만남을 가져왔다. 가벼운 만남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이어졌다. 현우가 이러한 가벼운 만남을 6개월 이상 여러 차례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몇 가지 조건, 상대 심리를 이용하는 타고난 감각, 자기 합리화하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현우는 어느 정도 돈을 버는지 가늠이 되는 직장과 지위, 누가 보아도 호감가는 선한 인상, 크게 유행타지 않고 적당히 세련된 패션 감각을 지녔다. 가볍게 만나고 싶은 여성을 발견하면 과하지 않은 친절과 배려로 다가가서 적당한 유머로 호감을 끌어낸 후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은근히 흘린다. 상대가 자신에게 끌린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 친절함을 잠시 거두거나 바쁜척하며 거리감을 두는 방법으로 상대의 마음에 가벼운 불안감을 심어 놓는다. 다가가고 거리두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자신에게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도 상대방을 좋아하지만 이혼의 아픔으로 아직은 진지한 관계가 정서적으로 어렵다고 상대에게 각인시킨다. 그러면 상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현우도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거나 아니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현우가 가장 중요시 여긴 건 성적인 유희였다. 이렇게 가벼운 만남이 시작이 되고 6개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상대는 결국 진지한 만남으로 발전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관계는 끝을 향해 나아간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여자는 상처를 받는다. 현우는 인간은 누구나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으며, 비록 가벼운 만남이었지만 자신도 헤어지는 건 늘 마음이 아프다고 합리화했다.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문제가 됐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나 영리하게 언제나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쪽이 상대 여자가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우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상대를 붙잡지는 않았다. 만남 중의 성적인 유희 뒤에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것과 같은 공허함에 사로 잡혔고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차라리 관계가 완전히 끝나고 나면 마치 추운 날 입김으로 얼어붙은 손 끝을 녹이듯 헤어짐의 여운이 공허함을 어설프게나마 잠시 매워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우는 이러한 반복된 만남에 실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5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진지한 만남을 가지려고 하고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두 번째 결혼은 첫 번째 결혼 보다는 훨씬 긴 기간 동안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진지한 만남을 가지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현우는 5년 동안 전혀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다. 20대 때 여러 차례 진지한 연애를 했고 심지어 결혼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그때는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마치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느낌마저 든다. 후천적 연애감각상실 모태솔로 증후군이라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희귀병에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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