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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20. 2023

M2의 마음 3

어느 봄날 일요일 오전.

현우는 잠에서 깬 후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거실로 나왔다. 현우의 집은 33층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79층 높인데 33층에 위치한 집을 구매한 것은 30층 대에서 바라본 전망이 제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뒷머리가 위로 뻗친 채 잠에서 덜 깨 붇기가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위로는 작은 조각 구름 몇 개가 떠있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따뜻한 봄날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강공원이 보인다. 밖에 보이는 사람들은 강에서 웨이크보드를 타고,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돗자리 위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프리스비를 던지고 받으며 뛰어다니고,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모두들 여유로워 보인다. 현우는 여유롭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마음이 여유롭지 않다. 왜 그런 걸까? 저들도 여유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속사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여유롭다고 암시를 하려고 저렇게 아침 일찍 한강공원에 나와있는지도 모른다. M2가 베이커리에서 갓 구워서 나온 신선한 빵과 따뜻하게 끓인 홍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M2가 끓인 홍차의 향과 맛은 언제나 일품이다.

“M2, 고마워. 그리고 베이커리에 다녀오느라고 수고 많았어.” 현우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의 즐거움입니다.” M2도 현우를 따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의 즐거움입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영어식 표현을 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어투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현우는 M2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AI 로봇이 그렇지, 그냥 연산하다 보니 그렇게 나온 거지 무슨 이유가 있겠어, 하고 만다.


M2는 인간형 AI 로봇으로 신제품 출시 전 현장 테스트를 위한 프로토타입 제품이다. 현우가 직접 테스를 한다는 명목으로 5년 전에 데리고 왔다. 이전 모델에 비해 가장 나아진 점은 놀랄 만큼 움직임이 인간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만약 고도 근시인 사람이 안경을 벗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M2의 움직임을 본다면 사람인지 로봇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이다. 1년 후면 M2의 후속 모델이 출시 예정이다. 그때 M2를 반납하고 새로운 모델의 프로토타입을 데리고 올지, 그간 정든 M2와 계속 지낼지 고민이다. 최근 M2가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 일은 현우가 진지하게 만날 만한 여성을 찾는 일이다. 데이트할 상대를 찾으려는 사람은 자신의 AI에게 요청을 하면 AI끼리 정보를 교환하면서 매칭한다. 이제는 굳이 먼 과거와 같이 결혼정보업체나 데이팅 앱과 같이 중간에서 매개하는 플랫폼이 필요가 없다.

“M2 괜찮은 사람 좀 찾아봤어?” 현우가 물었다.

“계속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조건에 맞는 상당수의 여성들을 만났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지. 프로필 상으로 아주 괜찮은데 막상 만나 보면 왜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은 지 모르겠어.”

“몇 주 전에 만난 사람은 어떤 점이 이상했습니까?”

“수줍어하는 성격인지 눈을 잘 못 맞춰. 주의도 산만해서 말할 때 머그컵을 봤다가 옆을 봤다가 정신없이 계속 고개를 움직여. 그리고 가끔가다가 대화의 맥락에 벗어나는 말을 하더라고. 내가 한창 얘기하는데 내 말을 뚝 끊더니 갑자기 머리를 어디서 하냐고 묻는 거야. 회사 근처 바버샵에서 한다고 했더니, 지금의 짧은 머리는 내 얼굴형이랑 안 맞는다고 헤어스타일이 너무 촌스럽다고 그러는 거 있지. 초면에 말이야. 그 얘기에 엄청 기분이 나빴거든. 초면에 그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아무튼 종종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이상한 지점에서 자기 혼자 웃고 그랬어. 첫 인상은 호감이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정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어. 어때? 이 정도면 M2가 봐도 이상한 거 맞지?”

“이상하다기 보다 눈치가 많이 없어서 상대방 기분을 잘 읽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일 듯합니다. 주의도 많이 산만한 성향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악의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래? 그럼 M2는 그 사람을 더 만나 보기를 권하는 거야?”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만, 현우님과는 성향이 안 맞을 수 있습니다. 현우님은 조금 예민한 편에다가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만나봐야 잘 지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몇 주 전에 만난 그 분은 사회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낮은 편이어서 현우님이 사귀는 상대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귀게 된다면 현우님 입장에서 많이 답답할 것입니다.”

“M2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한 사람은 아니어도 나랑은 안 맞을 것 같긴 해. 세상에는 다양한 성향의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예민한가?”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최근 만남을 가진 여성들에 대해서 예민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기해 줄 수 있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난지 30분만에 상대방이 동갑인데 말 놓자고 한 것이 거슬렸고, 대화를 하는 도중 상대가 턱을 괴면서 말하는 것이 예의가 없어 보였고, 다른 건 다 마음에 들었는데 사주나 전생 같은 신비주의를 믿는 것이 이해가 안 갔고, 약속 시간보다 15분 늦게 와서 사과를 제대로 안 했다고 싫었고,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벗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고 꼴사나왔고, 문화예술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취향이 너무 다르고, 코털이 하나 삐져나왔다고 호감이 안 갔고, 상대방 배려없이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현우님의 돈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 속물 같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만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잊고 있던 일도 많았네. 그런 경우도 있었어. 이혼한 사람이었는데 처음 결혼할 때 4년을 넘게 키우던 강아지를 결혼할 남자가 싫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다고 했어. 그 전까지 호감이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정이 확 떨어진 적도 있었지. 어떻게 같이 살던 가족을 그렇게 버릴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갔어. 이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M2 얘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좀 예민하긴 하네.”

“진지한 만남이라고 하면 조건 좋은 결혼할 상대를 찾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겁니까?” M2가 물었다.

M2의 질문이 전에 없이 사뭇 진지하게 다가왔고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지.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현우가 반문한다. “사랑이 뭘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성적인 매력에 끌리는 마음. to like another adult very much and be romantically and sexually attracted to someone, 입니다.”

“그건 너무 사전적인 대답인 걸.”

사실 M2가 사랑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건 사전적인 정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현우는 생각했다. 
 “방금 제가 말한 것이 사전적인 의미일 뿐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 라고 혹자는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우님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M2가 되물었다.

“글쎄. 사랑이라.. 나는 사실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지 의심스러워.”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사랑, 연애 같은 개념이 원래는 없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확실하지는 않은데 18세기 즈음에 생겨났다고 어떤 책에서 읽었던 것 같아. 맞는 말 같기도 해. 수백 년 전 만해도 엄청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기도 하고, 여성의 사회 활동 또한 아주 제한적이었는데 서로 사랑하고, 연애하고 그런 게 있을 수 있었겠어? 사랑이라는 건 인간이 발명한 개념일지도 몰라. 실제로는 사랑은 없을 수도 있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어쩌면 인간은 실제로 없는 걸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그런 거라면 사랑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이라는 개념을 모를 때는 사랑이 없지만, 사랑이라는 개념을 아는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인간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다. 아주 그럴싸한 논리인데.” 현우는 M2의 말을 곱씹어 보면서 말했다.

진지하게 만날 여성을 찾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내용이 점점 심오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실 현우는 지금 M2와 나누는 대화가 매우 놀랍다. M2와 이런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대화를 한 적이 있었던가? 인간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니. 단순한 질문은 할 수 있어도 이런 근본적인 감정이나 호기심을 갖는 것은 지금 모델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다음 신규 모델에서조차 이러한 기능이 구현되기가 어렵다. 로버트 주드 교수의 논문이 떠오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 보셨습니까?” M2가 물었다.

“그거 고전 소설인데, 아주 어렸을 때 읽어 봤지. M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어?”

“네, 읽었습니다. 전에 전자책을 구매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응. 물어봤던 것 기억나. 내가 사라고 했던 것 같아.”

그동안 M2는 현우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구매해 왔다. 불필요하거나 쓸데없는 걸 주문하는 경우는 없었기에 굳이 현우가 결제내역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는다. 얼마 전 전자책을 구매하겠다고 해서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자신에게 책을 추천하려나, 하고 그냥 그렇게 하라고만 하고 그 이후로 잊어버리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읽기 위해서 M2가 소설 구매 여부를 물어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소설처럼 가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던지는 그런 사랑이 실제로 존재할까요?”

M2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 현우는 M2의 얼굴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말한다. “에이, 그런 사람은 없지. 누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소설이니까 극적으로 표현한 거지. 그리고 아주 옛날 소설이잖아.”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좋은 사람 계속 찾아 주기를 부탁해.”

“기준을 조금 바꿔 보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

“직업, 학벌 기준을 낮춘다든지, 외모나 스타일도 기존 취향과 다른 느낌으로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의외의 매력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보자. 오히려 내가 이상한 데다가 까다로운 것일 수도 있어. 내 자신을 바꾸는 시도도 필요해 보여. 그럼 M2가 말한대로 기준을 바꿔서 알아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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