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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21. 2023

M2의 마음 5

어느 토요일 오후.

오늘은 M2가 찾아준 여성을 만나는 날이다. 조건을 바꿔보자는 M2의 제안 이후 두 명을 만났고 오늘이 세 번째 만남이다. 조건을 바꾸었다고 해서 이전에 만났던 여성들에 비해서 매력이 덜 하거나 어딘가 부족해 보이거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매력적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현우는 약속 시간 보다 15분 정도 빨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일찍 온 이유는 첫 만남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모든 약속에 10분 이상 일찍 오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평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고급스럽지도 않은 적당히 분위기 좋은 카페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점심 시간이 지났음에도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빈다. 카페 가장 안쪽에 그나마 조용할 것 같은 자리를 찾아 출입문이 보이는 곳에 앉았다. 현우는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1분 남짓 지나서 상대에게서 5분 후에 도착한다는 답장이 왔다. 정확하게 5분이 지나자 전화기에서 진동이 오는 동시에 벨이 울린다. 출입문을 열고 전화를 하면서 들어오는 여자가 보인다. 현우는 바로 수신 버튼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여보세요.”

그녀는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선 현우를 확인하고 환한 미소와 반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네, 안쪽 끝 자리에 계시네요.” 

자리로 다가오는 동안 현우는 그녀를 빠른 속도로 훑어본다. 평범한 얼굴이지만 호감가는 인상이고 옷차림은 신경을 많이 안 쓴 듯하지만 세련미가 있다. 큰 보폭으로 빠르게 걸어와 금세 현우가 있는 자리까지 왔다. 마치 빠르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자신은 성격이 밝고 당찬 사람이라는 걸 나타내려는 것 같았다.

반가운 표정을 유지한 채 그녀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이서하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정현우입니다. 차부터 주문할까요?” 

두 사람 모두 작은 사이즈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서하는 뜨거울까 입으로 조심스럽게 후후 불며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고 말한다. “여기 커피 맛이 좋네요. 저는 약속 시간 보다 항상 일찍 오는 편이거든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요. 그런데 저보다도 더 일찍 오셨네요.” 

“저도 약속 시간 보다 항상 일찍 오는 편입니다. 교통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제가 기다리는 게 마음이 편해서요.”

“어머, 우리 공통점이 있네요. 하하하.” 서하가 입을 가리고 크게 웃는다.

처음에 평범해 보였던 얼굴이 고개를 살짝 돌려서 웃으니 상당히 예뻐 보인다. 그 동안 첫인상에서 받았던 느낌이 바뀌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더 좋은 느낌으로 바뀌었다.  

“네 그러네요. 공통점이 있네요. 하하.”

서하가 현우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말한다. “그런데 사진 보다 실물이 훨씬 인상이 좋아요. 사진이 잘 안 받는 편인가 봐요?”

“그래요? 사진이 잘 안 나온다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서하씨도 사진 보다 실물이 훨씬 미인이예요.”

“하하. 빈말이라도 듣기 좋은데요. 솔직히 저는 실물보다 사진이 훨씬 낫죠. 얼마나 사진을 더 예쁘게 보이도록 건드렸는데요.”

현우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사진 보다 실물이 훨씬 나아 보였다. 실물이 낫다는 게 단순히 생김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 주는 서하의 묘한 분위기와 매력을 사진은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둘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누구 한 사람이 주도하는 그런 대화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갔으며 중간 중간에 가벼운 미소와 눈웃음이 녹아 들어있었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매칭으로 처음 만나면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서로를 알아가는 뻔한 내용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둘러싼 공간은 즐거움으로 차오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 사이에 크고 작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현우는 다음 날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서하는 조금의 망설이는 기색 없이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다음날. 서하와 현우는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어제와 다름없이 즐거운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제 첫 만남에서 어떤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했어요?” 서하가 물었다.

“당연히 좋은 사람이죠”

“좋은 사람..” 서하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무 모호한데요.”

“그러게요. 좋은 사람이라고만 하니까 모호하게 들리네요. 좋다는 것이 상대적이니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리고 솔직히 거기에다 외모까지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죠. 보통은 사진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러면 서하씨는 어떤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나왔어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사랑이요?” 너무 의외의 대답이어서 현우는 조금 놀랐다.

“왜 놀라시죠?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랑 얘기를 하니까 촌스럽나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니까요. 저만 해도 사랑이라는 게 실제로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시구나. 저도 예전에는 안 믿었어요.”

“실례가 안된다면 첫번째 결혼은 왜 헤어졌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전혀 실례가 아닙니다. 그 이유가 사랑 때문이예요.”

“네? 사랑 때문이라고요?”

”전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어요. 그걸 보고 저는 사랑을 믿게 됐고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서하의 말에 현우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결혼 중에 다른 여자를 만난 건 사랑이라기 보다 불륜이고 부도덕한 행위인데요. 상처가 컸겠어요.”

“맞아요. 그때 상처 많이 받았죠.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요즘 세상에 사랑이 사라지는 건 사랑을 지나치게 도덕과 결부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랑은 결코 도덕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 없고 절대로 도덕적인 쾌락의 경연장이 아니거든요.”

서하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럴 수 있겠네요.”

“두 번째 만남에 이런 말하면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요. 우리 첫번째 섹스는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저는 섹스는 단순히 살갗과 살갗이 부딪치고 섞이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섹스는 뇌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서두르다 보면 육체적 행위로만 뇌에 각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이해해주세요.” 서하가 순수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현우는 최대한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고 한다. “아.. 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연애는 감정적인 애무를 통해서 정서적인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요. 저도 관계에서 정서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현우는 서하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고 무슨 뜻인지 이해도 잘 안 갔다. 그래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정서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얘기나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알 수 없는 서하의 말이 현우에게 신비하고, 달콤하고, 관능적이게 다가왔다. 

두번째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하의 표정과 태도와 말의 뉘앙스는 우리는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거야, 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현우는 이미 서하를 계속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들킨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은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가능한 자주 만났고 몇 번 만나지 않고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알고 보니 서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교양 지식까지 풍부하여 만나면 늘 이야기거리가 풍성하고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눈치가 빠르고, 재치 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어느새 현우는 그녀에게 빠졌고 만날 때마다 다른 매력이 보였다. 하루는 공중을 나는 기분이 들다가, 다른 날은 맨발로 갯벌을 밟는 느낌이고, 어떨 때는 뜨거운 모래 사막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수북이 쌓인 눈길을 뽀드득뽀드득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딛는 마음이었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매력을 가진 여자다. 이 여자와 결혼한다면 두 번째 결혼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현우는 자신에게 세번째 결혼이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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