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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Oct 21. 2023

M2의 마음 6

석 달 후 어느 금요일 밤, 현우는 M2와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 의외입니다.” M2가 말했다.

“뭐가 의외라는 거야?”

“오히려 기준을 바꾸니 진지한 상대를 금방 만났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너무 신기해. 그동안 세상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봤어.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이라는 것이 말도 안되는 거였고. 내가 정말 문제가 많았어. 서하를 만나다니 엄청난 행운이야. 이게 다 M2 덕분이야.”

“사실 저는 기준을 바꾸면 진지한 상대를 못 만날 줄 알았습니다.”

현우가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왜 기준을 바꾸자고 한 거야?”

“아..” M2가 말이 없다.

현우는 M2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한 1분 정도 아무 말이 없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순간 고장이 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대답이 없어?”

“기준을 바꾸고 여러 번 만난 후 다시 예전 기준으로 바꿔서 만나면 사람 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현우님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눈이 높다는 말을 들어왔으니까요. 그렇게 함으로써 그 동안 한 번만 만났던 여자들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들이었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 저의 취지였습니다.”

“아, 그랬구나. 말이 되는데? 아이디어도 괜찮고. 그런데 오히려 기준을 낮추니 그 이전 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인 서하를 만나다니 세상은 참 오묘한 것 같아. 어떻게 보면 특정 기준이라는 걸 가지고 있던 것 자체가 문제였어. 지금까지 있지도 않은 기준을 내가 믿고 있었던 거야.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어리석고 바보였어.” 

“그런 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현우님의 기준은 다른 사람에 비해 그 폭이 좁았을 뿐입니다. 첫번째 결혼을 마치고 너무 일만 생각해서 그랬을 겁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부분에 있어서 시각이 좁아질 수 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 한때 가벼운 연애만 하고 일에 훨씬 몰두했지. 그때는 조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 내일 밖에서 같이 저녁 먹고 서하가 우리집에 오기로 했어. 내일 직접 만나볼 수 있을 거야.”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보면 어떤 분일지 궁금합니다. 이 집에 사귀는 여자 분이 오는 건 처음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 집으로 이사온지 5년 정도 됐으니 그렇겠다. 서하도 M2 엄청 보고 싶어해.”


다음날 늦은 밤.

어제 M2에게 말한대로 서하와 함께 집으로 왔다.

현우가 미처 소개하기도 전에 서하는 특유의 활기찬 모습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M2, 드디어 직접 만나게 됐네. 얘기 많이 들었어. 너무 반가워.”

“저도 반갑습니다.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서하가 악수를 건네자 M2가 쭈뼛쭈뼛하며 서하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

현우는 왜 그런지 M2가 서하를 조금 어색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M2 손이 따뜻한데.”

“표면이 사람의 체온하고 비슷하게 세팅이 돼 있어.” 현우가 말했다.

서하는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말한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지 더 사람 같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사실 나 M2 같이 고사양 인간형 AI 로봇이랑 직접 대화하는 건 처음이야. M2, 너무 영광이야. 그리고 듣던 것보다 직접 보니까 훨씬 멋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서하님은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실물이 훨씬 미인이십니다.”

그렇게 서하는 신기한 듯 M2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다. 말리지 않으면 둘의 대화가 끝날 것 같지 않아 M2는 배터리 충전할 시간이라고 하면서 서하에게 집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서하를 데리고 서재, 침실, 부엌, 화장실, 드레스룸을 보여주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집 너무 좋다.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이사 들어올 때 싹 다 새로 했어.”

환하게 밝은 거실 조명을 은은한 조명으로 바꾸어 조도를 낮추자 창 밖의 야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하는 창 가까이 바짝 다가가 야경을 본다.

“전망이 정말 끝내준다.”

“이 아파트에서 우리 집이 전망이 제일 좋아. 더 높은 층은 아래가 너무 작게 보여서 전망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고. 그래서 33층을 선택한 거야. 내일 아침에 보면 느낌이 또 완전히 다를 테니까 기대해.”

“그럴 것 같아. 얼른 내일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현우는 서하의 손을 잡고 침실로 이끌었다. 그들의 뇌는 그 날 첫 섹스를 했다. 그때 M2는 거실에서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었고 그들이 나누는 사랑의 소리가 들렸다. 살이 닿고, 미끄러지고, 부딪치고, 흥분하고, 탄성을 지르고, 절정에 이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M2는 끝이 보이지 않는 휘어진 긴 터널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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