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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May 27. 2024

가지치기

©Pexels/창가 선반에 다양한 화분과 물조리개가 놓여있다.

식물 기르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에는 화분이 많다. 베란다를 열 때마다 향긋하게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허브도 있고 맑은 공기 만들어 주는 공기정화 식물들도 있다. 가을이면 단풍 드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철마다 열매 맺는 과실수들도 몇 그루 있다.


볕이 잘 드는 집이라 그런지 때맞춰 물만 주어도 감사하게 녀석들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편이긴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나 미적 감각을 가지지 않은 나 때문에 특별히 예쁘게 자라지는 못한다. 때때로 우리 집을 방문하는 친구들이 가지치기를 권하기도 하지만 내 실력으로 섣부르게 도전하는 것은 그냥 놔두는 것만 못한 결과를 염려해야 하므로 우리 집 대부분의 화분은 야생 그대로의 모양으로 자란다.


무성하긴 하지만 깔끔하지 않고 열매를 맺긴 하지만 큰 수확은 없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은 ‘남들처럼…’을 고민할 때도 있지만 난 그냥 나대로의 가꾸기를 택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합리화한 것이 식물 입장에서 좋은 정원사는 이런저런 인위적 조치를 하지 않는 나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때맞춰서 가지치기를 해 준다면 조금 더 예쁜 모양으로 자라날 수 있겠지만 그 예쁜 모양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보는 입장에서 그런 것이지 식물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곳에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으니 좀 더 건강하게 자란다고들 하지만 그 건강의 잣대 또한 인간이 결정한 것이다. 더 큰 열매를 맺는 것도 조금 더 달콤한 과실이 열리는 것도 그런 과일을 먹고 싶은 인간의 욕구일 뿐이다. 


식물 입장에서는 가지가 옆으로 뻗든 위로 뻗든 한쪽으로 치우치든 불편할 것이 없으니, 가지가 잘려 나가는 아픔을 굳이 감내할 필요가 없다. 건강한 씨앗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작은 열매는 오히려 무겁지 않아서 좋다. 식물이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적극적 관심이나 간섭보다는 자연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난 이것을 식물 감수성 풍부한 정원사의 식물당사체 주의적 자연 성장이라고 명명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방임이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치명적인 위험을 맞닥뜨릴 수 있다면 최소한의 질서유지를 위한 간섭 정도는 필요할 수 있겠다. 애초에 이들이 사는 공간은 원초적 자연 그대로가 아닌 화분이므로 때맞춰서 적당한 물과 양분은 공급해 준다. 화분의 간격이나 위치는 햇볕을 잘 받을 수 있고 서로의 가지가 부딪히지 않은 것을 고려해서 적당히 배치하고 이따금 날씨와 계절에 따라 옮겨지기도 하며 어느 정도의 성장이 이루어지면 그에 맞는 분갈이도 제공한다. 그것은 각자의 생장 조건과 정원사의 입장이 적절히 고려된 타협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다. 


그마저도 인위적 조치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원시 아닌 문명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최소한의 양보와 희생이 동반된 질서가 필요한 것처럼 나라는 인간과 공생하기 위한 약간의 양보는 서로에게 필요하다. 식물의 자연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사람이 모든 것을 희생할 수는 없고 그 반대도 그렇기 때문이다. 


많은 다름이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도 감수성의 이슈가 자주 대두되곤 한다. 성 인지 감수성, 장애인식, 인종 평등… 기타 수많은 다름에 대해 우리는 감수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 대한 예를 고민하고 공부한다. ‘이런 것은 물어도 되나?’ ‘이렇게 대해도 될까?’를 때때마다 고민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무를 가지치기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생각의 근본적 근거는 인간을 위함인 것처럼 이성이든 다른 인종이든 장애인이든 그들을 위한다는 정책도 다수의 편의나 감정 해소를 위한 것들일 수 있다.


가지치기가 그렇듯 인간은 자신을 위한 행동들을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나무는 야생에서 자랄 때 가장 나무답게 멋있다. 나무 입장에서는 말이다. 무성하게 마구 자란 나무가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은 내 입장이다. 우리의 역할은 비 오지 않는 날에 물 몇 바가지를 부어주는 것 혹은 척박한 땅에서 조금 나은 땅으로 옮겨 심어주는 것 정도면 족하다. 삐뚤빼뚤한 가지도 작고 달지 않은 열매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봐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수성이다. 


약간의 불편함이나 부딪힘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제멋대로 가지치기하려 하면 안 된다.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어울려 살다 보면 사람의 간섭이 필요한 약간의 규칙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화분의 위치를 조금 옮기는 것처럼 최소한이어야만 한다. 우리의 다름도 있는 그대로 공존할 수 있다. 다름 간에 발생하는 약간의 부딪힘은 복잡하지 않은 최소한의 타협만으로도 해결 가능하다. 


제멋대로 키가 쑤욱 자란 남천이 오늘따라 더 멋지다. 손톱만한 열매를 맺은 딸기의 향이 유난히 향기롭다. 함께 사는 모든 다름이 제 모양 그대로 마음껏 자유롭고 향기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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