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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Sep 16. 2022

요가원 빌런

오늘은 요가 네 번째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 직전까지 갈까 말까 망설이다 막판에 갔더니 수업이 이미 시작된 후였다. 맨 뒷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내가 앉은 자리 앞에 기둥이 있어서 강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말소리 들으면서 하면 되지. 다른 사람 보면서 해도 되고.'


요가 시간에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예전에 회사 근처에 살았을 때 다녔던 요가원은 참 좋았지만, 요가 강사님의 말투가 좀 거슬렸다. 명사를 동사처럼 사용한다거나, 비문을 많이 말한다거나, 말을 이상하게 끝맺는다거나. 지금은 오래돼서 구체적 예시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처음으로 다녀본 요가원이었으므로 '요가에선 다 저런 식으로 말하나 보다.' 하면서도 몹시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요가원의 분위기나 요가의 운동 효과가 좋아서 강사님의 거슬리는 말투를 참고 6개월간 다녔다.


몇 년 전에 현 아파트에 이사 와서는 아파트 커뮤니티에 있는 요가 수업을 등록했다. 퇴근하고 부랴부랴 와서 저녁도 못 먹고 8시 수업을 들었는데, 운동을 너무 힘들게 시켜서 현기증이 났다. 게다가 요가 수업에서 통상적으로 나오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이 아닌, 파워풀한 가요가 나와서 운동에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배고파서 몇 번 가다 말았다.


저녁은 먹고 운동을 가야겠다 싶어 밤 9시 수업을 등록했는데 이번엔 강사님의 말투가 또 거슬렸다. 나이가 많은 강사님은 자꾸 반말로, 더 정확히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말했다. 강사님의 반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뒤틀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맨몸 운동을 잠깐 하다가, 아령과 요가 링을 사용하다가 하는 수업 방식이 뭐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몇 번 가다 말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오전 10시 수업은 음악도 잔잔하고 운동의 강도도 적당하다. 강사님의 말투도 거슬리지 않는다. 내 몸뚱이가 잘 안 따라주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비교적 좋은 수업이다. 


그러나 나는 이 수업에서 빌런을 발견했다. 항상 핑크색 반팔 티셔츠에 카키색 요가 바지를 입고 오는 수강생이다. 이 사람은 요가를 하다 말고 핸드폰을 본다.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세요." 하면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핸드폰을 보고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세요." 하면 왼쪽으로 기울이다 말고 핸드폰을 본다. 그 사람은 첫 수업부터 그랬기 때문에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뭐 급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만 업무 성격의 이메일이나 문서 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나 인스타, 포털 사이트 등을 보는 것처럼 보였다. (오지랖을 발휘해 매의 눈으로 봤다. 멀어서 틀릴 수도 있다.) 게다가 잠깐 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었다. 핸드폰을 보다가 옆에 놨다가 3초 후에 또 보고 놨다가 또 보는 식이다.


오늘은 수업 시작하고 40분 정도 됐을 때, 모두가 앉아 있는 상황에서 '핑크티 빌런'이 갑자기 일어나서 뒤로 가더니 핸드폰을 들고 왔다. 오늘은 핸드폰을 보는 사람이 없다 했더니 이 수강생이 제 딴에는 참고 있었나 보다. '아! 10분만 더 기다리면 수업이 끝인데 저분은 금단 증상을 참을 수 없었구나.' 핸드폰 안 보기 챌린지가 실패한 것인 양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누우라 해도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뒤늦게 누워서도 동작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 '핑크티 빌런'이여! 50분밖에 되지 않는 수업에서, 그 시간만이라도 집중하지 못하고 대체 왜 핸드폰을 보는 것인지 그저 안타깝구료.


나 역시 남을 관찰하느라 집중을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 누가 누굴 뭐라 할 것은 아닌 듯하나, 거슬린다 거슬려. 요가 수업을 거슬리게 한 핑크티 빌런 유죄! 다음엔 일찍 가서 빌런보다 앞에 자리를 잡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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