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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Nov 15. 2023

마지막 도서 봉사

11월이 되니 한 해의 마무리로 접어든 느낌이 든다. 부쩍 추워진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연말까지 한 달 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했던 활동도 하나둘 끝나간다. 그중 하나는 아이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한 도서 봉사였다.


학교마다 사정이 다를 텐데 우리 아이 학교의 경우 학년 초에 초등 1학년과 2학년 학부모에게 도서 봉사 신청을 받는다. 한 반에 두세 명의 지원자를 받으면 약 40명의 봉사단이 꾸려진다. 배정받은 날짜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두 시간 동안 도서 봉사를 하고, 매일 한 명씩 배정되기 때문에 봉사단이 만나는 일은 없다.


작년에 나는 첫 봉사일을 앞두고 급하게 맹장염 수술을 하게 되어 봉사하러 가지 못했다. 주말에 수술하고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이라 다른 봉사단과 당번을 바꿀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서 선생님께 어찌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작년 봄엔 코로나가 아직 기승을 부릴 때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서 봉사를 신청했다. 올해는 확실히 작년에 비해 도서관 이용이 활발했다. 아이의 학교는 각 반마다 도서관 수업 시간을 배정하여 학급 단위로 도서관에 와서 자유롭게 책을 읽는다. 각 학년별로 9개 또는 10개 반이 있는 학교라 요일별, 시간별로 촘촘히 순서를 정해도 2주에 한 번 도서관 수업 시간이 돌아온다.


책을 정리하면서 여러 학급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어떤 반은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수시로 주의 주고 지적하여 모두가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책을 읽는다. 이런 환경에선 속삭이는 것 또한 금지다. 어떤 반은 산발적으로 떠들며 책을 읽는다. 선생님이 안 보이는 곳에서 (안 보이는 거 같아도 다 보인다) 떠들고 장난치다 선생님으로부터 지적받으면 잠깐 조용하다. 또 어떤 반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활기차게 책을 읽는다. 예를 들면 이렇게.

"이 책 봤어? 이거 진짜 재밌다?"

"야, 여기 웃긴 거 나와. 봐봐."




도서 봉사의 주된 임무는 아이들이 반납한 책들을 도서 분류 번호에 맞게 꽂고 잘못 꽂혀 있는 책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앉았다 일어났다,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다 보면 은근히 체력이 소요된다. 그래도 책으로 가득했던 카트가 비워진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어제는 나의 마지막 봉사일이었다. 원활한 책 정리를 위해 미리 어깨와 팔 스트레칭을 하고 갔는데, 어제는 사서 선생님이 다른 일을 부탁하셨다. 바로 도서 분류 라벨을 떼는 일이었다.


도서관에는 매 학기 새로운 책이 들어오고, 책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된 책은 정리가 필요하다. 오래되고 중복으로 보유한 책은 도서관에 두 권만 남기고 방출한다. 상태가 불량한 도서는 폐기하지만, 상태가 괜찮으나 방출된 도서는 라벨을 뗀 후 각 학급 비치용으로 보내진다.  

 

그리하여 나는 구석에 자리 잡고 방출 도서의 라벨을 떼기 시작했다. 라벨 위를 덮은 테이프 밑으로 커터칼을 사악 넣어 테이프를 들리게 하고 장갑 낀 손으로 테이프와 라벨 스티커를 떼어냈다. 어떤 책은 한 번에 깔끔하게 떨어져 희열을 안겨준 반면, 어떤 책은 테이프가 조각나거나 라벨이 중간에 찢어지거나 암만 떼도 잘 안 떨어지거나 책 표지까지 같이 찢어져서 심호흡을 유발했다.


오른손으로 살살 칼을 다룬다고 다뤘는데도 어쩌다 한 번씩 손이 미끄러졌다. (일명 삑사리) 칼날이 왼손을 몇 번 찔러 아팠으나, 다행히 장갑을 끼고 작업하여 상처가 나진 않았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내가 떼어낸 라벨 쓰레기를  한 5학년 학생이 "와! 산이네!"라고 알은체를 해주어 반가웠다.

라벨을 뗀 책들과 쓰레기 더미


라벨을 떼어야 할 책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시간이 다 되었다. 남은 책은 다음 봉사자들이 잘해주리라 믿으며 봉사를 마쳤다. 이렇게 작년 두 번, 올해 네 번의 도서 정리와 올해 두 번의 도서 운영 위원회 회의 참석까지 총 8차례의 도서 봉사가 끝났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라고 사서 선생님이 마지막 인사를 해주셔서 봉사가 끝났다는 게 실감 났다.


그동안 미약하게나마 아이들 학교 도서관에 도움을 보탤 수 있어 보람찼다. 또한 학생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이었다. 학교 도서관 규모가 아주 크진 않아도 책이 꽤나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어 학생들이 잘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올해 4월 학부모총회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자신한테 맞는 책을 못 찾은 것뿐이죠."


아이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고 읽으며 자신한테 딱 맞는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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