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10. 공손추 상 公孫丑 上 3.6
문장 10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선대의 왕들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에 바탕을 둔 따뜻한 정치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배려하고 어질게 정치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손바닥 위에 물건을 올려놓고 다루는 것처럼 쉽다.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지금 어떤 사람이 아주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갑자기 보게 되었다고 치자.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惻隱之心)으로 그 아이를 구하러 달려갈 것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어 보상이라도 받을까 해서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 칭찬을 들어 명예를 얻고자 해서도 아니다. 사람들의 원성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이런 사실로 보건대,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是非之心)이 없으면 이 사회를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실마리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실마리이고, 사양지심은 예(禮)의 실마리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의 실마리이다. 사람이 이 네 개의 실마리[四端]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팔다리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사람이기를 거부하는 자요, 자기 군주가 인의예지를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자는 그 군주를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망치는 자이다.
무릇 자기 안의 사단을 가지고, 그것을 사회에 확대하고 충만하게 할 줄 안다면, 그것은 마치 불이 막 타올라 들판에 번지는 것과 같고, 샘이 흐리기 시작해 널리 큰 땅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인의예지, 사단을 충만하게 할 수 있다면, 천하를 다스리고 평화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단을 충만하게 할 수 없다면, 자기 부모도 섬길 줄 모르는 인간 이하의 인간이 될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不忍之心, 다른 이의 불행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선대의 왕들이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정치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운용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之心.1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之掌上. 맹자왈: 인개유불인지심. 선왕유불인지심, 기유불인지정의. 이불인인지심, 행불인인지정, 치천하가운지장상.
사람들이 모두 다른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려고 하는 근거는, 지금 어떤 사람이 아주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갑자기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마음(惻隱之心)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으려(內交, ‘납교’로 읽는다) 해서가 아니고, 마을 사람들(鄕黨, ‘향당’은 고대 지역의 말단 주민조직)이나 벗들에게 명예를 얻고자 해서도 아니고, 그로 인한 원성이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2 소이위인개유불인인지심자, 금인사견유자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비소이납교어유자지부모야, 비소이요예어향당붕우야 비오기성이연야.
이런 사실로 보건대,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由是觀之, 無惻隱之心非人也, 無羞惡之心非人也, 無辭讓之心非人也, 無是非之心非人也. 유시관지 무측은지심비인야, 무수오지심비인야, 무사양지심비인야, 무시비지심비인야.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개의 단서[四端]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사지[四體]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惻隱之心仁之端也; 羞惡之心義之端也; 辭讓之心禮之端也; 是非之心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3 측은지심인지단야; 수오지심의지단야; 사양지심예지단야; 시비지심지지단야. 인지유시사단야, 유기유사체야.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자요, 자기 군주가 (인의예지를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자는 그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 유시사단이자위불능자, 자적자야; 위기군불능자, 적기군자야.
무릇 자기 안[我]의 사단을 가지고, 그것을 다 확대하고 충만하게 할 줄 안다면, (그것은) 마치 불이 막 타오르는 것과 같고, 샘이 흐르기 시작해 널리 도달하는 것과 같다.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범유사단어아자, 지개확이충지의, 약화지시연, 천지시달.
만약 그것(사단)을 충만하게 할 수 있다면, 사해(四海, 천하)를 보전할 수 있지만, 만약 충만하게 할 수 없다면, 자기 부모를 섬기는 데도 부족할 것이다.”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구능충지, 족이보사해; 구불충지, 부족이사부모.
앞서 제선왕이 소를 불쌍히 여기는 문장에서 ‘불인지심’이 이미 나왔었다. 거기서 맹자는 왕도(王道)의 출발이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한 바 있다. 이번 문장은 그 생각을 철학적으로 좀더 밀고 나간 내용이다.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도우려는 마음이 인(仁)의 출발이고 이것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의 기본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짊에서 출발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의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쉽다고 말한다.
이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의 비유를 들어, 흔히 맹자의 입장을 성선설(性善說)로 말하곤 한다. 사람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성선설은 무조건적인 인간의 본성이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인간으로서 인간의 본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진화심리학의 연구들이 증언하듯이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서로 돕고 이타(利他)의 행동을 하도록 발전해왔다. 사회를 이루고 나라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측은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의 우물 비유는 그런 측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측은지심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는, 인간다운 인간이 못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바로 뒤에 나오는 사단(四端)으로 이어지고 사단을 가지지 못한 자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기본으로 문명 속에 살고, 사회를 이루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속성으로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들고 있다. 측은지심이 인(仁)이니 그것이 사단 중에서도 그것이 가장 중심이다. 나쁜 일을 부끄러워하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의(義)이다.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과 행동이 예(禮)이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능력이 지(智)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없는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문명의 일원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다. 그러니 몸에 사지(四肢)가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 사단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단(四端)의 단(端)은 단서, 실마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것은 완성된 실체가 아니다. 아름다운 사회, 의미있는 사회를 만드는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을 넓히고 채워가면 마치 들불처럼, 샘물처럼 전 사회가 인의예지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실마리를 제대로 확대시키지 못하면 제 부모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인간이 되고, 결국 그런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사단을 중심으로 유학이 매우 많은 논의와 학설을 만들어낸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조선 말, 이 사단(四端)을 건강과 연결시킨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같은 독특한 사례도 있다. 인(仁)이 강하고 예(禮)가 약한 사람이 태양인, 예(禮)가 강하고 인(仁)이 약한 사람이 태음인, 의(義)가 강하고 지(智)가 약한 사람이 소양인, 지(智)가 강하고 의(義)가 약한 사람이 소음인으로 분류된다. 본래 강한 속성은 잘 유지하고 약한 속성을 북돋으면 그것이 몸이라는 우주를 건강하게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니 이는 서구 과학에서 말하는 의학(醫學)이라기보다는 유학(儒學)을 몸과 연결시키는 새로운 사상이라고 보는 편이 올바르겠다.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四端)은 사회의 필요충분조건에 대한 논의로, 오늘날에도 윤리적 지향점을 제시하는 매우 유효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