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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y 06. 2016

상해에서 집 계약 하기

07.1주, 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아래는 <외국어 덕후의 중국어 정복기> 목차이자 첫 글




학원에서는 <我们的汉语教室 初级(3)>이라는 책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上海译文出版社라는 출판사에서 만든 책인데 나는 외국어 책은 깔끔하게 적당히 색깔이 들어간 것이 좋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흑백에 가까운 책이다. 다만 굉장히 예문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1 챕터 당 2개 정도 있는 본문을 충분히 공부하고 나면,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것 같다. 오늘 주제는 집 구하기였다. 그런데 마침 오늘이 집 계약하는 날이기도 했다.


租金,阿姨,餐具,房产中介,押金,合同...

집세, 청소아줌마, 식기, 공인중개소, 보증금, 계약서 등 평소에는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을 단어들이 오늘따라 한 번만 보면 어찌나 잘 외워지던지. 그리고 8시부터 12시까지 수업에 30분 일찍 나왔다. 상해에서 월세 집은 계약할 때 보증금 1달(월세 1달치)에 월세 3달치를 한 번에 납부해야 한단다. 그런데 상해 집값이 비싸서 4달치 월세 수준의 이 금액이 적지 않았고, 뽑아 가야 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연락했지만 한국인 공인중개사는 답장이 없어서 혹시나 뽑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준비하기 위해 조금 일찍 나왔다. 그런데 계속 연락이 없는 한국인 공인중개사 양반. 결국 오늘 만나기로 한 중국인 공인중개사에게 연락을 '중국어'로 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 학원에서 배운 단어장을 펼쳐가며 겨우 "돈을 뽑아가야 하냐? 아니면 가서 주면 되냐?"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냥 쿨하게 오라길래, 돈은 뽑지 않고 그냥 갔다.



우리 부부는 상대적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인 공인중개사의 소개로 집을 알아봤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은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상태였고 중국 공인 중개사에게 알선만 해주고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집을 알아볼 때는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는 중국인을 보내더니, 계약서를 쓰는 오늘은 심지어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손발을 동원한 필사적인 의사소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무려 집주인은 상해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서, 우리는 화상통화로 서로의 존재를 겨우 확인했다. 서로의 여권을 보여주면서 인사했고, 나는 한국인이고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으니까 금방 대화할 수 있을 거야 말했고, 그녀는 무슨 일 있으면 부동산에 연락해서 해결하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한국어 원본을 바탕으로 계약서를 살피고, 서명을 하고, 은행에 가서 돈을 부치고, 집에 가서 가구 및 집안의 도구들의 상태를 살피는 일을 공인중개사와 중국어로만 소통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전체의 약 20~30% 정도를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모든 대화의 20~30%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대화 주제에 대해서는 (아마도 학원에서 자기소개에 썼을 만한) 60~70%까지도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0%의 이해도를 기록했다. 다만 오히려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온몸의 신경을 곤두 세워서 무슨 말을 하는지 감으로 때려잡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의사소통의 오류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한 달 월세의 35%가 부동산 수수료였는데, 가계약금으로 수수료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이미 걸어놓은 상태였다. 나는 월세 4달치 중에서 부동산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만 집주인에게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체를 보내고 내가 기존에 보낸 가계약금에서 부동산 수수료를 뺀 돈만큼 돌려주겠다고 한 거였다. 은행에서 돈을 보내려고 승강이를 벌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후 1시에 만나서 거의 4시까지 이어진 상해에서 집 구하기 덕분에 매우 긴 하루를 보냈다. 다음번에 집을 구하게 될 때는 훨씬 더 유창한 중국어로 덜 불편할 테지만, 아무튼 집 구하기는 자주 하고 싶지는 않은 불편한 일인 건 틀림없어 보인다. 다만 오늘 학원에서 배운 내용들을 공인중개사 양반들이 돈도 따로 안 받고 (물론 부동산 중개비는 받았지만) 열심히 복습시켜줬다는데 의의를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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