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불이라고 절대 안심하지 마라
아래는 <상해 견문록> 첫 글이자 목차
상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눈이 오던 날 와이탄에서 동방명주를 보고 자동차로 5분 거리의 숙소로 돌아오던 날 기본요금인 2,700원이면 될 걸 20,000원이나 달라고 하던 그 택시 기사에 머물러 있었다. 맛있던 식사와 으리으리한 건물도 그 바가지요금 앞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상해에서 조금 중국어를 하기 시작하자 많은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국 택시 기사는 내가 가는 목적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조금도 옆길로 돌아가지 않고 목적지로 향했고, 짧은 외국어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길을 돌아가게 되면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미터기를 끄는 젠틀함도 보였다.
사실 나는 똑같은 경험을 한국에서도 한 적이 있는데, 부인의 중국인 친구 3명이 한국에 놀러 왔을 때 공항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가 짐이 많다며 자꾸 택시를 2대에 나눠서 타라고 전화가 온 적이 있다. 막상 도착해보니 조그만 짐 1개씩 들고 있는 아가씨 세 명이었는데, 우리가 한국어로 한 소리 하지 않았다면 기어이 한국에 낯선 그 친구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길 뻔했다. 어디든지 잘 모르는 사람 등쳐먹으려는 사람들이 문제다.
상해에서는 집 근처에 있는 과일 가게에서 내 주먹보다 큰 망고를 2천 원이면 먹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여태껏 귤과 복숭아를 가장 좋아한다고 믿어왔는데,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그 자리를 망고에게 내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커다란 애플 망고 하나에 천 원이면 먹을 수 있었던 브라질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어디 원산지랑 비교할 수 있으랴. 그리고 만원만 내면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발마사지를 1시간이나 즐길 수 있다. 역시 한의학의 종주국 답게 혈 누르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부인도 한국에서는 10만 원을 훌쩍 넘겼을 화려한 네일아트가 만원이 조금 넘는다며 난리다. 한국보다 온갖 서비스가 발달해서, 집에서 모든 걸 시켜먹을 수 있다. 알리페이 하나만 켜면, 그 안에서 밀크티, 중국, 한식, 일식, 심지어 스타벅스 커피까지 배달해준다. 택시를 타고 내릴 때도 알리페이 하나면 끝이다. 타오바오라는 중국 최대 쇼핑앱으로 오늘 저녁에 냉장고를 주문하면 내일 아침에 배달이 된단다. 심지어 동네 과일가게도 자체 앱을 갖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런데 매일 놀라면서도 아직 하나 적응되지 않는 것은 상해의 교통질서다. 한마디로 말하면 '좌회전 신호가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물론 간혹 좌회전 신호가 있는 곳은 있다) 자동차가 직진 신호에 불이 켜지면 좌회전을 시도한다. 거의 모든 도로가 좌회전 비보호랄까? 만약 운전자가 아니라면 이게 큰 일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맞은편에서도 차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맞은편에 차가 오는데 거길 비집고 좌회전을 하고, 보통 직진 신호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 양쪽 횡단보도에도 녹색 불이 들어오는데 거기도 마구 지나간다. 그런데 한국 같으면 보행자가 지나가고 차량이 지나갈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다. 녹색 불에 여유 있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노라면 가끔 자동차가 빨리 지나가라고 경적을 울리거나, 정말 사람 한 명 칠 듯이 옆으로 지나가는데 세상 그 어디에서도 한 적 없는 경험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생각보다 횡단보도로 길을 건널 때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 큰 스트레스다. 물론 그러다 보니, 내가 무단횡단을 해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 것 같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나의 의문은 '좌회전 신호가 없는데 운전자들이 무시하고 좌회전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중국은 법규상 좌회전 신호가 없지만 비보호로 좌회전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점이다. 아무래도 다들 너무 당당하니까 후자일 것 같지만, 부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잠시 정신을 놓을 수 있는 여유는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