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설날, 구정, 정월 초하루'라고 불리는 신년의 아침입니다.
설날 아침 욕심껏 만두를 빚어 떡만둣국을 먹습니다. 소고기 양지 찬물에 담가 핏물 빼고 대파와 마늘, 다시마와 무를 넣고 국이 끓기 시작하면 정성스럽게 거품을 걷어내고, 맑게 곰국을 끓여냅니다. 명절에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메인이라면, 스토브에서 끓고 있는 맑은 소고깃국은 명절의 배경과도 같이 중심을 잡아주는 향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냄새, 명절의 기름 냄새와 국 냄새는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아 참 좋습니다.
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3번째 농산물(1위는 옥수수, 2위는 사탕수수)입니다.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아시아 대부분 지역과 중동,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곡물입니다.
쌀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의 만주지역에서 소비되는 자포니카 품종(japonica type)과 인도와 아랍, 동남아시아에서 소비되는 '알란미'라고 부르는 인디카 품종(indica type)으로 나뉩니다.
자포니카 품종은 떡을 만들기에 필요한 아밀로 펙틴과 아밀로오스의 함량이 우수하여 동아시아 3국은 떡 문화가 발달합니다. 아밀로 펙틴 함량이 높을수록 입에 짝 달라붙는 찰기를 더합니다.
중국은 멥쌀을 빻아서 시루에 찌는 시루떡을 만드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떡을 만드는 방법이고,
일본은 아밀로 펙틴 100%인 찹쌀을 쪄서 돌절구에 쳐서 떡을 만드는 방법으로 '모찌'와 같이 찰기 가득한 찹쌀떡을 만듭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멥쌀을 쪄서 돌절구에 쳐서 떡을 만들고, 가래떡을 만들어 굳힌 후 엽전 모양으로 썰어 노화시켜 떡국을 주식으로 끓여 먹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떡이 주식이 아닌 부식의 의미이지만, 우리나라의 겨울철의 떡국은 부식이 아닌 주식이었습니다. 명절에서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친지들과 동네 사람들이 명절놀이를 하며 떡국을 나누어 먹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을 듯합니다.
떡국의 기원을 찾아보면 우리나라는 '병탕(餠湯)'이라고 불리는 말 그대로 '떡(餠)'국(湯)'의 기원을 삼국시대 때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 벼가 주작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고 우리나라의 전통 식사의 기본구조가 정립되었습니다.
떡이 먼저일까요?
밥이 먼저일까요?
정답은 떡이 먼저입니다.
고등학교 국사책에 나오는 삼국시대 이전의 토기들은 요리를 하거나 밥을 해 먹는 것보다는 곡식을 보관하거나 찌는데 쓰이는 기구들입니다.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이 세워지면서 철기문화가 들어오고, 한반도는 부족 국가 시대를 맞이합니다. 농경이 발전하며 벼를 비롯한 기장, 보리, 콩 등의 생산도 늘어나게 됩니다. 농경이 발전하면서 추수 후에 제천행사(祭天行事)로 이루어지고, 추수감사절로 발전하며 떡과 술등 음식을 만들고 빗는 조리법도 발전합니다.
고구려 안악 고분 벽화에는 곡물을 쪄서 떡을 지어먹었음을 증명하는 벽화가 남아있습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부엌은 기능적으로 모양을 갖추고 조리기구가 고안되면서 삼국시대의 요리는 진 일보 발전합니다. 이 시기에 이르러 무쇠솥이 보급되고 시루에 찌는 방식이 아닌 부뚜막의 가마솥에서 밥을 짓고 뜸을 들이는 과정의 진정한 '무쇠솥 밥맛'이 등장합니다. 오늘날 냄비에 해당하는 쟁개비와 전골냄비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식문화의 발전이 그 이전과 비교하여 혁신적인 발전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밥이 일반화되면서 밥과 어울리는 채소 절임과 장류, 젓갈등이 이 시기에 발달하게 되고 한민족의 식문화와 일반적인 식사 형태가 완성됩니다.
철기시대 후반, 무쇠솥이라는 새로운 기술력이 우리나라의 음식문화와 문명의 역사를 바꿉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초라 함은 정월 초하루부터 정월대보름까지 농한기인 겨울철 신년의 축제 기간이었습니다. 서양에서 크리스마스가 축제인 것처럼 말입니다.
쌀을 빻아서 떡을 만들고, 가을 햇살과 차가운 겨울의 건조함으로 보관한 말린 나물들, 김장철 땅속에 묻어둔 맛난 김치와 지금은 흔하지 않지만 전에는 지금의 닭보다 흔했다는 꿩을 잡아 꿩만두를 하고, 곶감과 대추를 차례상에 올리고 차례를 지냈습니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만들고, 부럼을 깨어 액운을 쫓아내고,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쥐불놀이로 화려하게 끝이 나는 우리 조상들의 진정한 축제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철 비닐하우스도 없고, 특수채소도 없던 진짜 농한기이다 보니 윷놀이를 하고 , 제기도 차고, 반가에서는 투구도 하던 현재의 우리가 보면 힐링하는 풍경이었을 시절입니다.
정월초의 식습관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는 떡국과 젓갈, 저(김치의 옛말)를 기본으로 하고 육류와 해산물 등으로 신년의 아침상을 차리고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에 보면 '탕병'이라는 떡국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중국에서도 떡국을 먹는 풍습이 있고, 일본에는 신년 음식인 오세치요리와 그중에서도 우리네 떡국과 비슷한 '오조니'는 맑은 국물에 찹쌀떡을 담가먹는 요리가 있습니다. 우리네 먹거리 전통과 비슷한 일본도 '감정적으로는 멀지만 참 가까운 나라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은 떡만 넣은 떡국보다 떡과 만두를 같이 넣은 떡만둣국이 대세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북쪽 지방은 설에 만둣국을 많이 먹고, 남쪽 지방은 떡국을 선호하였으나 해방과 전후 실향민들이 많이 내려오면서부터 떡만둣국을 먹는다고 합니다.
개성에서 먹는다는 조랭이 떡국처럼 각 지방마다 떡국의 모양과 국물의 차이가 있습니다. 충남이 고향인 저는 굴국에 떡과 만두를 넣는 굴 떡국이 제 입맛에는 진짜 떡국입니다. 각 지방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그 지역색이 있는 떡국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떡국은 집사람 취향인 소고기 떡만둣국을 끓여 설 아침상을 먹습니다. 떡국에 빠질 수 없는 낙지젓갈과 함께 만두를 한입 떠 넣으니 명절을 먹는 듯합니다. 명절의 맛을 느낍니다.
떡국 먹고, 오늘은 인사동을 나가려고 합니다. 명절을 느끼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고, 인사동 공영주차장이 명절에는 '공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