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고난과 역경이 있게 마련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아주 원초적인 먹을 것에 관련된 것, 입는 것 등 주로 생존에 관련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워낙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이자 역경이었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려웠답니다. 이러한 고난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누구에게나 있어 왔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다고 해서 그 고난에 대응하는 방법이 같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가수 이상우, 그의 가족에게 닥쳤던 고난과 불행 그것을 이겨낸 스토리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이상우님은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가수로 데뷔합니다. 슬픈 그림 같은 사랑, 그 유명한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이라는 히트곡을 발표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가수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가수는 그가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 연예인이 되어서 사업에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상우 님, 그가 사업가로 성공을 꿈꾸게 된 건 바로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합니다. 어릴 적 사업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업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이었죠. 대학교 때 전공 역시 사업을 하기 위해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그의 사업에 대한 열정을 알아 줄만 한 것 같네요.
이상우 님, 실제로도 사업을 시작하면서 바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바로 서울 방배동의 커피전문점이었다고 합니다. 1995년도에 3억 5천을 투자해서 커피전문점을 오픈했다고 합니다. 휴대폰이 흔하지 않았던 당시 혁신적이게 커피숍 내에 테이블마다 전화기를 두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아이템이 상당한 화제가 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커피숍을 한 이후 그는 아이들 실내 놀이터, 부동산 투자 , 매니지 먼트 사업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하는 사업마다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승승장구하면서 약 36억 원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성공에 이은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고난과 역경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상우 님은 1990년도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던 이인자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감을 느꼈던, 이상우님은 괜히 대시했다 거절 당해서 민망한 상황이 생길까 봐 주저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함께 했던 회식자리 이후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가면서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발달장애 있는 아이는 발달 속도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많이 느린 아이를 말해요 신발 신는 걸 익히는데만 2개월이나 걸리고, 옷을 입는데 6개월, 대소변을 가리는데 1년이 걸리기도 해요. 발달 장애아에 대한 치료법을 찾는 것도... 치료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에요'
이상우 님은 30개월 된 첫째를 병원에 데려갔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발달 장애 판정을 받는 순간 병원 밖으로 뛰어나갔다고 합니다. 이상우 님은 아이의 장애 판정에 한동안 술을 마시면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태연했어요. 발달장애아는 100% 완치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큰아들은 가족을 뭉치게 해 줬어요. 이상우 님도 큰아들을 통해서 감사함을 의미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부부는 그 이후 큰아들을 돌보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모든 발달이 느린 발달 장애아 승훈이는 7살이 될 때까지 손뼉 치는 법을 몰랐다고 합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들, 아빠 오셨어 준비해 그러자 아이가 두 손을 부딪히며 노래를 불러 주었어요 박수를 치기 위해 힘겹게 노력한 아내를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어요'
현재 집 한채만 남겨 놓고 전재산을 발달장애 복지사업에 투자했어요. 앞으로도 버는 돈 모두를 투자할 생각이에요. '이 나라의 많은 장애아를 위해서 복지사업에 투자할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