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연재를 통해 내가 쓰는 이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봤다. 정말 쓸 말이 없을 것 같았는데 또 할 말이 생겨 놀랐다. 이제는 내가 왜 쓰는지 그 당위성에 대해 무겁게 생각하는 건 그만두려 한다. 어떤 친절한 작가님의 조언대로 이왕 쓰기로 한 이상 그 결과물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면 족할 테니..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주저함은 그저 나에게 족쇄가 될 뿐이니..
‘왜’ 쓰는지에 대한 의문은 내 행동과 결과에 대한 합리성을 찾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보상이나 이득이 없는데, 오히려 내 체력을 갉아먹는 쪽에 선 이 일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라는 게 신기해서. 하지만 이곳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고 안심했다. 쓰는 게 괴로워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좋았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선택을 하는 때가 있다. 어떤 이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갑자기 때려치우고 스님이 되기로 결정한다. 어떤 이는 인생의 청춘을 다 바쳐 한 남자만 바라보다 어느 날 문득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결혼한다. 얼핏 보면 그들의 선택이 무모하고 황당해 보일 수 있으나 난 어떤 행동의 가치 판단에 앞서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개인의 가치관에 그들의 행동이 부합하건 말건, 그 당시 그들은 살기 위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의 방향키를 완전히 틀어버린 그들의 선택과 내 상황을 동일선상에 두는 게 비약일 수 있으나 나 역시 어느 날 문득 쓰기를 택했다. 그리고 쓰면서 알았다. 내가 쓰는 이유 역시 내가 살기 위해서, 고통과 절망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 남은 삶을 더 잘 살길 바라는 ‘나’를 위해서라는 걸. 오로지 나만 생각하며 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과 며느리로서, 사회적 인간으로서 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그전까지 나는 내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내 삶의 우선순위는 ‘나 자신의 욕구’라기보다 보이는 혹은 마땅히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 또 다른 나였다. 지금도 어렵긴 하다. 워킹맘들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매번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처럼, 나도 더 좋은 엄마, 더 좋은 아내로서 해야 하는 일들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몸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한다. 그리고 그 모두를 다 잘할 수 없는 내 깜냥을 알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내 일상을 가지치기하려 애쓴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의 기쁨을 알아간다고 하면 너무 비장한 걸까. 단순한 삶의 역설은 내가 좋아하는 뭔가가 뚜렷할 때라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남겨두고 가지치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았다. 중병환자가 되었다는 계기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향해가는지 조차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행운아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충만하게 하는 무언가를 찾았기에. 일상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을 빼고 남은 모든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모든 일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다 문득 이기적인 엄마나 이기적인 아내가 되어가는 것 같아 뜨끔할 때도 있지만 그냥 믿기로 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남편도, 내 옆에 있는 사람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아직은 내 몸을 돌보며 꼭 해야 하는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만도 버겁다는 걸 인정하고 날 조금 더 사랑하기로.
어쨌든 내 삶을 더 잘 가꾸기 위한 가지치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매일 갈팡질팡하고 소심한 나라서 몇 번씩 다짐이 흔들리고 실행을 못할 때도 많지만, 그렇게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이정표가 생긴 것 같다. 살기 위해 쓸 수밖에 없었던 내 마음이 이제는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을 향해 나아간다.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보상이 없더라도 언제든 기댈 수 있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어깨가 하나 생긴 것 같아 든든하다.
이런 마음이 흔들릴 때, 또 별거 아닌 일로 상처받을 때, 기쁨이 마구 솟구쳐 오를 때도 나는 어딘가에 또 뭔가를 쓸 것이다. 종교는 없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써내려 갈 것이다. 그리고 뿌듯해하고 후련해할 것이다. 마치 여기저기 영역 표시를 하는 동물들처럼. 역시 여기도 내 자리지 하며 안심하는 것처럼. 이렇게 조금씩 흔들리며 조금은 더 단단해지길 바라며.
Ps. 오늘로 저의 연재글 '쓰는 마음'을 마치려 합니다. 지금껏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분들 온 맘으로 감사드려요. 모두들 따뜻하고 청량하고 충만한 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