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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26. 2024

풀하우스

우리들이 카톡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묵묵히 밭에 물 주고 있었을 언니의 남편분 뒷모습이 애처롭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 영실 언니에게는 밭이 있다. 너른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아주 멋진 곳이다. 초보 농부이자 밭에 매일 나갈 수 없는 언니 부부는 거기에 블루베리 화분을 몇 개 가져다 놓았다. 수확시기가 짧고 가을에 붉게 물드는 잎이 아름다워서라고 했다. 이제 밭을 가꾸기 시작한 지 삼 년. 울퉁불퉁하고 잡초가 무성하던 땅은 그사이 고르게 되었으며 배수시설과 비닐하우스도 생겼다.


  언니는 올여름, 여행을 다녀오느라 밭을 자연에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 장마철에 일주일 정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맞닥뜨린 밭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을 테지만 유연하게 웃어넘긴 듯하다. 비닐하우스를 보고 풀하우스라 하는 나를 재치 있다며 치켜주었으니까.


  언니가 보내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비닐하우스 안을 그득 채울 만큼 자란 풀, 비닐 씌운 틈새로 몸을 숙여가면서까지 자라 나온 풀을 보면서 만약에 더 긴 시간을 내버려 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 봤다. 비닐은 삭고 사방에서 날아든 씨앗이 발화하여 풀밭은 더욱 풍성하고 무성해질 터였다. 온갖 벌레들이 모여들고 어쩌면 뱀까지 돌아다니게 될 수도 있다. 어느 날 그 밭의 주인이 찾아가면 거기 사는 생명체들은 멀뚱히 쳐다보거나 윙윙거리며 경계하겠지. 댁은 뉘시길래 남의 공간에 들어온 거요? 


  문득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떠오른다. 금발 곱슬머리, 갸름한 얼굴, 예쁜 웃음을 지닌 왕자. 우리는 그가 B612로 무사히 돌아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리라 믿곤 한다. 화자가 궁금해하는 내용도 양이 장미 한 송이를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다. 왕자에게 그려준 양의 입마개에 가죽 끈을 달아주지 않아서다. 너무 순진한 걱정이다. 나는 도저히 그의 행성이 일 년 전과 똑같은 상태, 내지는 며칠 비운 집인 양 환기하고 먼지 털어내면 되는 정도일 거라고는 믿을 수 없다.


  왕자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든, 까다로운 장미가 피곤해서든 일 년간 B612를 떠나 있었다. 그동안 장미와 바오바브나무, 화산이라고 변하지 않았을 리 없다. 바오바브나무가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그의 작은 행성이 이미 산산조각 났을 수도 있고, 갑자기 장미 씨앗이 날아 들어왔듯 못 보던 별의별 씨앗이 싹을 틔웠을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가 꾸준히 청소해 주던 화산도 얌전히 그 시간을 버텼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과 똑같다면 그만큼 어린 왕자의 존재가 B612에 별 의미가 없었다는 뜻이 아닐지.


  생텍쥐페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꽃은 머지않아 사라질 수 있는 덧없는 존재라 이야기했고, 행성에 있던 것들의 위험성도 언급했다. 그러나 소설인 듯 동화 같은 이야기의 독자층은 넓을 테고, 말랑말랑 시적인 분위기에 젖어 든 그들에게 차마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식의 마무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우는 길들이는 방법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나는 행복해질 거야……. 그렇게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여 그 관계가 아무런 노력 없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도박판에 뛰어들자마자 풀하우스를 손에 쥘 확률만큼 낮을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기다리는 이가 오지 않으면, 기다리던 마음이 조금씩 다치다가 언젠가는 아예 닫히고 말 테니까.     


덧붙이는 글

풀하우스가 될 확률은 0.14%, 약 700:1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도박판에서 첫 풀하우스라면 확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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