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음식 문화가 발달한 만큼, 조리 관련 어휘가 무척 다채롭습니다.
간을 맞추다, 간을 보다, 갈다, 거르다, 곁들이다, 굽다, 까다, 깎다, 끓이다, 끼얹다, 다듬다, 다지다, 달구다, 담그다, 두르다, 데우다, 데치다, 무치다, 바르다, 반죽하다, 버무리다, 벗기다, 볶다, 부치다, 뿌리다, 빻다, 빚다, 삶다, 섞다, 썰다, 쑤다, 씻다, 식히다, 얼리다, 으깨다, 우리다, 입히다, 자르다, 재우다, 조리다, 지지다, 찌다, 체에 치다, 치대다, 튀기다, 풀다, 휘젓다…….
중급 1 음식과 요리 단원에는 요리 준비 및 방법 관련 어휘가 나옵니다. 물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에서 위에 적은 모든 표현을 다루지는 않아요. 하지만 학생들은 한국에 살면서 한식을 직접 만들어 봤고 먹어봤지요. 그래서인지 세세한 조리 표현에 어려워하면서도 재밌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한 학생이 ‘나물을 무치다’라는 표현을 보고 ‘버무리다’와는 뭐가 다른지 물었어요.
* 무치다: 나물 따위에 갖은양념을 넣고 골고루 한데 뒤섞다.
* 버무리다: 여러 가지를 한데에 뒤섞다.
‘무치다’는 주재료에 양념을 넣고 골고루 뒤섞을 때 씁니다. 사전에서 말하듯 시금치무침, 콩나물무침 등 나물에 주로 쓰지만 회무침에도 쓰지요. ‘버무리다’는 김장 전 김치 양념을 골고루 섞을 때나 절이지 않고 만드는 겉절이에 주로 씁니다. 무치는 재료로는 손으로 좀 힘을 주어도 견딜 수 있는 데친 나물인 예가 많고, 버무리는 재료로는 손에 힘을 주면 모양이 망가지기 쉬운 생야채가 많지요. 무칠 때는 손으로 조물조물하고 버무릴 때는 손이나 젓가락, 주걱으로 설설 섞어요.
‘찌다, 삶다, 끓이다’의 차이도 궁금해했어요.
* 찌다: 뜨거운 김으로 익히거나 데우다.
* 삶다: 물에 넣고 끓이다.
* 끓다: 액체가 몹시 뜨거워져서 소리를 내면서 거품이 솟아오르다.
(‘끓이다’는 ‘끓다’의 사동사)
‘찌다’는 사전적 의미로도 ‘삶다·끓이다’와 구분이 됩니다. 찌다는 뜨거운 김으로, 그러니까 물에 직접 닿지 않아요. ‘삶다’와 ‘끓이다’는 사전적 의미만 봐서는 모호해요. ‘들어가는 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에서 언급했듯이 끓은 물을 버리는지 먹는지로 ‘삶다’와 ‘끓이다’를 구분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를테면 계란을 물에 넣고 삶은 뒤 계란만 먹고 끓은 물은 버리지만, 계란국과 라면은 끓여서 국물까지 다 먹어도 되죠.
‘삶다’와 ‘끓이다’의 차이를 설명할 때 저는 계란을 삶다, 계란국을 끓이다, 를 예로 들었습니다. 뒤늦게야 계란찜기, 찐 계란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찾아보니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인 우리말샘에 찐 계란이 있는데 뜻이 물에 삶아 익힌 계란이라고 되어 있어요. 삶은 계란은 물에 넣고 끓여 익힌 계란으로 되어 있고요. 찐 계란의 정의에 ‘삶다’가 들어가서 살짝 거슬립니다. 저는 찐 만두나 찐빵처럼 찜기 혹은 찜용 판을 이용해 쪄야 찐 계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작가 한강의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에 찐 계란이 나와요.
「인상적인 일은, 이 스케치북을 펼치고 만년필이 종이를 미끄러져 나갈 때마다 마치 어떤 막을 더듬거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되곤 했다는 것이다. 찐 계란의 껍질을 벗길 때 드러나는 얇고 흰 막 같은 것. 그랬던가. 내 삶의 기억이란, 그 연약한 막 위를 더듬어 나아가고 있었던가.」
문학을 언급한 김에 역시 요리 문화가 발달한 멕시코가 배경인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도 소개하겠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요리 관련 관용 표현, 음식의 맛과 조리 과정에 사랑과 심리를 절묘하게 엮었어요. 작품 해설에 따르면 원제 ‘Como agua para chocholate’는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더는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을 의미한다고 해요.
한국어 역시 요리 용어로 심리나 타인과의 관계를 표현하곤 합니다. 우리 삶에 음식이 빠질 수 없으며 식재료가 무수히 변해 요리로 거듭나니 절로 비유가 떠오르는 것이지요. 달콤하다, 싱겁다, 담백하다, 씁쓸하다는 음식 맛으로 사람의 성격이나 상황을 묘사해요. 조리나 섭취 관련 용어도 있어요. 구워삶다, 들들 볶다, 뼈까지 바르다, 초를 치다, 속 태우다, 쌈 싸 먹다, 씹어 먹다, 날로 먹다, 등. 식재료나 음식 입장에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울 거예요. 특히 사람에게 쓸 때, 식인 문화가 아닌데도 직관적이고 잔혹해요. 조리란 칼 든 자가 식재료를 통제하는 과정이고, 먹는 동작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까요.
타인을 구워삶고 들볶는 말은 마음을 날카롭게 찌르고, 담백하다거나 진국이라는 말은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집니다. 식재료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요리사가 맛을 살리듯, 말을 다루는 우리도 상대의 마음을 살피며 언어를 ‘요리’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