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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04. 2022

가을이 가면

내 기억이 맞다면 9월 초순쯤이었을 거다. 슬슬 가을이 오는가 싶어서 [가을이 오면]이라는 가제를 정하고 글을 좀 써 내려갔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직 날씨도 따뜻하고 단풍도 지지 않아 글에 대한 느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가을이 오면 다시 쓰겠다고 다짐하며 비어 있는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 놓고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질 때쯤 아차 싶어 기억이 떠올라 다시 노트를 펼치니 어느새 가을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고 저만치 가고 있다.


가을이 독자적인 계절이 아닌 그저 여름과 겨울의 문턱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길었던 여름과 그보다 길 겨울에 비해 짧게만 느껴져서, 그 짧다는 사실이 진한 여운을 남길 만큼 아름답기만 한 시간이어서, 언제가 시작이고 언제가 끝인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나날이 야속해서 그렇다.


가을에 대한 글을 다시 떠올리기에 나의 기억력은 형편없었고, 글을 완성시키기에 가을은 몹시도 짧았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가을은 잠시 곁에 머물다 추위에 떠밀리듯 떠나간다. 그래서 가을이 가면 쏟아지던 낙엽처럼 아쉬움도 쏟아진다. 내년에 찾아올 가을에는 그 아쉬움이 덜 하도록 글을 꼭 써보기로 하고 여전히 글자 하나 없이 깨끗한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 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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