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시작
내가 앓고 있는 오랜 지병인 ‘건선’은
자주 나를 무너트리곤 한다.
처음 건선이 내 피부에 올라온 건
초등학생 때인데, 약 3년간 육상부에서
운동선수로 활동했다.
어린 나이에 선후배 간 서열이 극심한 운동부라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존댓말을 했으며,
서로 간의 시기와 질투 속에 많은 날들을 속앓이 하곤 했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운동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날이 좋았던 어느 날,
기억 속 조각엔 엄마에게 무언가 서러워
사랑받지 못한다는 기분을 느꼈고 배에 올라온
작은 발진을 좋지 않은 기분으로 긁었다.
그 발진이 내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르고 말이다.
교복을 입어야 하는 학생 시절에는
두피건선의 각질이 어깨 부위에 잔뜩 떨어져
비듬으로 오해받고 했다.
남색 교복을 입는 겨울에는 그게 참 곤혹이었다.
나는 생선이 아닌데, 몸에서는 무슨 비늘 같은 각질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 건지
할머니네 이부자리에 누웠다 일어나면 동그란 각질들이 그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잠시 갔던 건선 피부염은( 늘 어느 부위에는 존재했지만 )
20대 첫 직장을 퇴사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만성피부염에도 불구하고 피부미용이 전공이라
누군가의 피부를 관리해주어야 하는 역할이다.
그 당시엔, 후배들에게 천사 선배가 되는 게 소소한 목표이기도 했다.
거절을 잘 못하고, 착한 아이 증후군이 의심되던 그때의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해 전철이 끊기는 시간까지 괜찮다며 근무하는 날도 있었다.
1시간 이상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던 날엔
첫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요즘
내가 많이 좋아하던 남자 친구와의 여행 중
일광화상으로 인해 부분에서 전신으로 피부염이 도졌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는데,
마침 코로나가 터졌다.
나는 어차피 그거와는 별개로 집에서 요양이 필요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피부가 낫지 않아
마음을 쓰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엄마가 걱정하며 등에 연고를 발라줄 때면
엄마가 등 뒤에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다.
왜냐하면 나는 왜인지모를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게 되니깐 말이다.
사실, 어디가 크게 아픈 게 아니라 보이기에
불편한 피부염인데-
그게 왜 이리 내 마음을 쓰게 하는 것일까.
밤에 우는 날이 길어지는 날에는
모든 문제로부터도 멀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목에 응어리가 맺히는 날에는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질문의 답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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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투정 어린 글이 얼마나 사치인가 싶을 때가
있다.
적어도 나는 어딘가 통증을 느끼거나 하는 건 아니니깐, 나보다 힘든 사람들은 세상에 많으니깐
오늘은 그분들, 그리고 나에게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