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되자
북미의 사회생활은 죽어라 자맥질하는 오리 같다. 겉은 화려해도, 이면에는 말상대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끝없이 화제를 탐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만취해 떠날 때까지 웃음과 수다를 반복하는데, 내향적인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유학생인 한 친구는 ‘밋업(meet up)’이란 어플이 알려지기 전부터 틈틈이 언어교환을 나가곤 했다. 지금은 밋업으로 양궁이란 취미를 찾은 덕분에 캐나다에 온 내게도 종종 권했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 옛날 같으면 신청 전부터 망설였겠지만 여행이고 구직이고 부끄럽다면 부끄럽고 피곤하다면 피곤할 일을 단기간에 장맛비 맞듯 겪어버린 탓에 나는 적당히 옷을 차려입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엉거주춤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이벤트 스태프로서 쟁반을 이고 왕복하며 보았던 이곳식 사회생활을, 이번엔 내가 참여해야 되는 것이었다.
뭐 마실래
중국계 출신 특유의 발랄함이 특징인 그 남자의 권유를 시작으로 관심이 불쑥 쏟아졌다. 그렇다. 이미 밋업은 시작되었고, 나는 그 술집의 위치적 중심에 있었다. 내 뒤에 있던 남자는 인도 출신 영상제작과 학생으로, 프리랜서 프로듀싱을 하는 중이란다. 어쨌거나 방구석에서 절찬리 창작 중이었기에 대화의 구미가 당겼다. "무슨 장르 좋아해?" "아, 나는 코미디가 좋아. '오피스' 알아?" 한 십오 분 넘게 떠들었을까, 어느새 기타리스트 사내까지 끼어들어 적당히 영화와 음악을 주제로 질릴 때까지 반복하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유창한 여성이 끼어들었다.
"안녕, 이미 밋업 시작했어? 나는 로스쿨 졸업했어, 너희는 무슨 일 해?"
이게 바로 '사'자 붙는 직업의 말주변인가. 입을 열 때마다 쏟아내는 그녀의 정보량에 감탄하며 넋 놓고 있으려니 자칫하면 대화에서 겉돌게 생겼다. 어쩐지 나보단 곁의 두 남자들에게 더 질문이 많은 그녀. 약간의 의심과 회의감이 생길 때쯤, 누가 한국인을 급히 찾는다.
"저기요, 한국인이에요? 이리 좀 와 봐요."(한국어)
나는 흠칫 뒤를 돌았다. 딱 봐도 한민족 핏줄은 아닌 사람이 나를 자기 테이블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한국인 학생을 가르쳐 봤다는 선생이 그의 한국어 실력을 의심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드디어 말 그대로 '언어교환'의 순간이 왔나 싶어 나는 입에 시동을 걸려 했다. 웬 이상한 놈이 끼어들기 전까진.
"뭐 마실래? 내가 살게."
"아니, 괜찮아."
"마셔, 산다니까."
"괜찮은데..."
확실히 거절해야 했다고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뭐 할까. 굳이 산다고 난리 치는 사람을 말릴 순 없어서 그를 따라 다시 바 쪽으로 걸어갔다. 또 한 잔의 음료수를 마시려는데 허리에 손을 얹더니 하는 말.
"기다리는 동안 번호 줘."
"이거 이상한 사람 아냐?"(한국어)
방금 그 한국어 사용자와 이상한 남자 사이에 기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음료가 나오고, 결국 번호를 준 나는 화장실로 피신을 떠났다. 눈 감으면 코 베이는 곳이었나, 밋업이.
몇 분이나 변기에 앉아 있었을까. 오랜만의 외출을 한 명 때문에 망치진 않겠단 각오로 나온 나는 다른 패거리 틈에 슬쩍 끼었다. 어디나 있는 한국인 둘과의 어색한 눈빛교환과 테이블을 선회하는 대회 끝에 나를 찾아온 건 이전의 한국어 사용자와 기타리스트.
더 이상 신선함도 없겠다, 흥은 이미 깨졌겠다 싶어 나는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그런데 한국인 사용자가 하는 말,
"카톡 교환할래?"
그래, 어쩐지 한국어가 유창하더라. 이럴 속셈으로 도와준 건가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아이디를 주는데 맨 처음 콜라를 사준 그 남자가 말을 붙였다.
"Hey, 콜라 사줬는데 나는 번호 안 줘?"
순간 어마어마한 피로가 확 몰려왔다.
경험은 정말로 자양분이 될까
사실 이 날은 오후 늦게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관광에서 감흥을 잃은 지 오래고, 노동은 뚝 끊긴 데다가 글 쓰는 성과는 어른거리기만 할 뿐 손에 잡히지 않는데, 규칙적인 생활도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사교활동을 나가봤자 어떤 효용이 있을까.
쉬이 자리를 털지 못한 나는 상념 속에서 세면대로 향했다.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는데 드는 생각, 워홀 첫 달에 카드가 정지된 나를 도와준 아저씨의 얼굴.
무의식 속에서 흘러나온 누군가의 호의가 내 하루를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이제는 새삼스럽다. 뇌의 의식작용이린 어찌나 심오한지, 그날 교환한 전화번호는 전부 차단했어도 하루에 열다섯 시간을 일한다던 영화제작과 학생의 이야기는 마치 교훈처럼 머리에서 맴돈다. 만남이 한 밤의 소요로 끝난 지금조차도.
최근에는 시청 앞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발목을 접질릴까 봐, 넘어져서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봐 덜덜 떠는데 갑자기 어느 날의 필사 구절이 떠올랐다. 실망하더라도 계속 기대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칼럼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한 시간 반동안 스케이트를 즐겼다. 내 인생에서 남의 시청 광장 위를 미끄러질 경험이 또 언제 돌아올까.
두 시간을 소모하는 만남에서도 본받을 만한 사람이 있다. 인연을 위해 서투른 영어로 참석한 사람들, 하루를 꿈에 쏫아붓는 학생, 배낭을 메고 순간을 즐기던 현지인. 경험은 자양(滋養)분이 아니다. 자양(自養)분이다. 의미를 발견하는 건 나 자신이고, 괴롭고 부끄러운 순간으로 남을지라도 발을 디뎌야 올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