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금이 간 유리

— 은의 이야기

by 시더로즈





— 은의 이야기





은에게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수진. 대학 동기이자 유일하게 오래 남은 사람. 은이 약속을 자주 취소해도, 답장이 느려도, 갑자기 연락이 끊겨도 기다려주는 사람. 은은 수진에게 여러 번 미안했고, 여러 번 고마웠고, 그래서 여러 번 수진에게만은 솔직하려 애썼다.

유리온실 이야기도 수진에게 했다.

퇴근길에 이상한 골목을 발견했다는 것, 그 안에 유리온실이 있었다는 것, 작은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것. 울었더니 비가 내렸다는 것까지.

수진은 카페 테이블 너머로 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아, 요즘 너 너무 지친 거 아니야?"

은은 웃었다. "아니, 진짜야. 진짜 있어."

"응, 알아. 근데 그게 내 말이야." 수진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 요즘 회사에서 힘들다며. 잠도 못 자고. 그런 상태에서 환상 같은 걸 보는 거 아닐까 걱정돼서."

환상.

그 단어가 은의 가슴에 얇은 금을 냈다.

"수진아, 나 정말 이상한 사람처럼 보여?"

"이상하다는 게 아니야. 그냥 걱정이 되는 거지." 수진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은은 그걸 알았다. 수진이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달랐다. 은에게는 늘 그랬다.

머리는 이해했지만, 가슴은 이미 깨지고 있었다.

그날 밤 은은 유리온실을 찾았다.

골목은 나타났다. 요즘은 은이 간절할수록 더 쉽게 나타났다. 하지만 오늘따라 골목의 빛이 흐렸다. 이불 속 아침 햇살이 아니라, 흐린 날 창문으로 들어오는 회색빛 같은. 은은 걸음을 빨리했다.

온실 문을 열자마자 알았다.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셀리는 자라 있었다. 줄기가 손바닥 길이만큼 올라왔고, 꼭대기에 조그만 잎이 두 장 펼쳐져 있었다. 여리고 투명한, 아직 초록이라 부르기엔 너무 연한 색의 잎. 은은 다른 날이었다면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셀리가 눈에 들어오기 전에 다른 것이 먼저 보였다.

유리벽에 금이 가 있었다.

온실 왼쪽 벽, 은의 어깨 높이쯤 되는 곳.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금이 유리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금은 하나가 아니었다. 중심에서 시작해 네댓 갈래로 뻗어 있었고, 그 끝은 아직도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마치 — 살아 있는 것처럼.

은은 손을 뻗어 금에 닿았다. 차가웠다. 유리의 나머지 부분은 늘 미지근했는데, 금이 간 곳만 차가웠다. 손끝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유리가 아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거야?"

은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온실은 은의 마음과 이어져 있었다. 눈물이 비가 되는 곳이라면, 상처는 금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수진의 말이 떠올랐다. 환상. 그 한 마디가 은의 안에서 계속 메아리쳤다.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줄 거라 믿었던 사람이,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환상이라 불렀다. 수진이 틀린 걸까. 아니면 정말로, 이 모든 것이 은의 지친 머릿속이 만들어낸 환각일까.

은은 유리벽에 등을 기대고 미끄러져 앉았다. 금이 간 유리가 등 뒤에서 작게 삐걱거렸다.

"나 원래 이래."

은은 무릎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좋은 것도 오래 못 가져. 뭘 시작해도 끝까지 못 해. 식물도 말리고, 일기도 못 이어가고, 사람도 — 사람도 자꾸 멀어져."

목소리가 떨렸다.

"이것도 결국 깨질 거야. 내가 깨뜨릴 거야. 나는 늘 그러니까."

온실이 어두워졌다.

천장의 이슬빛이 흐려지고, 풀들이 잎을 오므렸다. 은의 말이 온실의 온도를 내리고 있었다. 유리벽의 금이 조금 더 번졌다. 삐걱,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한 번 더 났다.

은은 눈을 감았다.

그때 무언가가 은의 손등에 닿았다.

아주 가볍게. 바람도 아니고 물방울도 아닌, 살아 있는 무언가의 감촉. 은이 눈을 떴을 때, 셀리의 잎 하나가 화분 밖으로 길게 뻗어 은의 손등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여리고, 투명하고, 아직 초록이라 부르기엔 너무 연한 잎.

그 잎이 은의 손등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은이 떨리는 것인지 잎이 떨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은은 한참을 그 잎을 내려다보았다.

셀리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뭐라 했을까. 가지 마. 였을까. 괜찮아. 였을까. 아니면 그냥, 여기 있어. 였을까.

은은 다른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 잎을 감쌌다. 부러뜨릴까 봐 겁이 났지만, 잎은 은의 손 안에서 오히려 떨림을 멈췄다.

"……고마워."

은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유리벽의 금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번지는 것은 멈춰 있었다. 온실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셀리의 잎 끝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나고 있었다. 이슬에 맺힌 별빛 같은, 아주 작은 빛.

어둠 전부를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한 빛이었다.

하지만 은의 손등 위에 올린 잎 하나만큼은 충분히 비추는 빛이었다.

은은 그날 오래 머물렀다.

셀리의 잎을 손 위에 올린 채, 금 간 유리벽에 기대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바라는 것이 아무 소용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바라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 은은 수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환상일 수도 있어. 근데 환상이어도 괜찮아. 나한테는 진짜니까."

보내고 나서 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답장을 확인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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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다는 것은 깨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버티고 있다는 뜻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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