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다

내가 쓴 시

by 랑랑

호기롭게 붓을 들어 그리기 시작했지

알면 알수록 어려워

그리면 그릴수록 어려워

급하게 덮어버린 스케치북엔

덜 마른 물감들이 뭉개져

반대쪽에 어설픈 데칼코마니를 만들었다


쉽다는 건 축복이지

사과가 가득한 정물화처럼

은유가 가득한 시처럼

고기반찬 가득한 밥상처럼

은행과 은행잎 가득한 가을 인도처럼

너는 쉽고 나는 너를 사랑해


노란색을 덕지덕지

신생아는 모유를 먹어서 노란 똥을 누고 구수한 냄새가 나

영근 은행알들은 노랗게 떨어지고 냄새가 나

코를 막고 한 마디씩 뱉고 사라지는 사람들

사람의 귀는 얼굴 옆에 있는데

네 귀는 어디 있는 걸까


노란색을 처벅처벅

내 아이의 똥 냄새는 괜찮은데

다른 아이의 똥 냄새는 구리지

내 똥 냄새는 아무렇지 않지만

배우자의 똥 냄새가 역겨워 미치는 날이 있지

사람의 코는 눈과 입 사이에 있는데

네 코는 어디 있는 걸까


노란색을 올리면 올릴수록

종이가 때처럼 일어나서

그리기를 멈추고 한참을 기다려

가까이 보면 얼룩덜룩 너덜너덜하지만

멀리서 보면 풍요롭고 영롱한 네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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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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