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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Oct 13. 2023

공짜가 공짜가 아니다

공짜 강의의 무게, 생활고

  “안우례씨, 큐알 체크 해주셔야 하는데요.”

  “네? 큐알이요?”


 맨날 한글 파일만 쓰다가 케이팝 기사를 워드 파일로 작성하래서 작성하려고 결제를 하려는데 해외 원화 결제가 안 됐다. 고객센터에 문의를 해보니 은행에 가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필요하고 나중에 해외직구로 돌도 사고해야 해서 꼭 가야 했다.


 카드 재발급의 무게려니 하며 땡볕을 걷고 있는데 걸려온 웹소설 국비지원 담당자의 전화였다. 오늘이 웹소설 수업 개강일이구나. 어떻게 이런 걸 잊어버릴 수 있는지. 공휴일 이틀 뒤 여파로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오전 9시에 폭염문자가 안 오면 오히려 허전할 정도로 유독 더운 올해 여름 날씨 때문인 건지. 부주의한 주제에 괜히 변명거리를 찾으며 집으로 뛰어갔다.


 그나저나 국비지원을 듣게 되다니. 얼마 전 포토샵 기초과정을 퇴직 전에 만들어 놓았던 내일배움카드로 배우려고 컴퓨터 학원에 상담을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원 측은 포토샵 기초과정은 겉핧기라며 웹디자이너 국비지원과정을 권유했고 혹할 뻔했다. 그저 매듭 액세서리로 스마트 스토어 차릴 때 도움이 될까 해서 조금 배워두려는 것이었다. 간단한 배경정리랑 색상 보정 정도는 해야 될 거 같아서 들으려 했던 건데 필요한 것보다 너무 많이 배울 필요는 없었다. 세상살이는 꼭 필요한 거 배우기에도 시간이 그리 여여한 것이 아니어서 말이다.


 하지만 학원에서 추천한 과정은 5개월 동안 일일 8시간 주 5일 수업만 들어야 했고 코딩에 홈페이지 제작까지 배웠다. 그리고 따로 연습도 해야 되는 모양인데 정말 업으로 하지 않는 한 국비지원은 투머치였다. 그것만 해야 했다. 그냥 없는 게 없는 유튜브에서 포토샵 기초 강의를 듣기로 했다. 찾아보니 줌으로 들을 수 있는 내일 배움 카드 과정도 제법 있었다.


 예전에 재직자환급과정으로 귀금속 공예를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직접 만든 반지를 선물 받고 싶었는데 딱히 선물해 줄 사람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반지는 좀 갖고 싶고 해서 ‘그냥 내가 만들고 말지.’ 하며 귀금속 공예 수업을 들었었다.


 마치 대장장이가 된 거처럼 몸은 좀 고됐지만 재미있었다. 외근을 마치고 지하철에서 만난 친구 남편이 "너 사는 거 재밌니?" 하고 묻길래 재밌다고 나 요즘 이거 배운다며 처음 만든 반지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무미건조하고 돈 버는 거 빼고는 낙이 없는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행복 비타민이었달까.


 수강이 끝날 무렵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 했고 그때 마침 국비지원으로 귀금속 공예를 6개월 동안 일일 8시간 주 5일 동안 가르쳐주는 과정이 개강을 했는데 실업자 대상이라 그냥 들으면 됐는데 고민을 좀 하다가 그냥 이직을 하기로 하고 이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재직자 과정이나 또 들으러 올 생각으로 그곳을 떠났는데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공시생이 그것도 장수생이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었기에.


 국비지원과정은 기본 6개월 안팎인 줄 알았는데 짧은 것도 있다. 지금 듣는 것이 그렇다. 국비지원도 종류가 다양한 거 같다. 일단 기본반은 9일인 데다 그 기간이 또 아직은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이라 아직은 부담이 없다. ‘잘 맞으면 듣고 아님 마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듣게 되었다. 첫날 30분 지각이 무색하게 나름 잘 적응해서 지금까지 듣고 있다. 심화반 강의는 대체로 몇 달의 텀이 있는데 이번 과정은 심화반 수업이 다음 달에 바로 열린다고 한다.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이 과정은 고용보험이 가입되어 있으면 들을 수 없다. 이제 곧 실업급여가 끝나서 일을 해야 하는데 취업시기에 물음표가 떴다. 물론 과제량을 봐서는 병행 자체가 좀 힘들 거 같기도 하다. 수업 때마다 리뷰 과제가 있고 며칠 후에는 시놉시스도 내야 한다. 한두 달 궁핍하게 살고 데뷔를 앞당기는 것과 소득의 텀 없이 취업하는 것 사이를 고민했다. 그러다 뜻밖의 열쇠를 과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귀금속 공예 배워뒀으면 언제든 조물딱 거릴 수 있는 취미 하나 더 늘렸을 것이고 꼭 취업 안 고 창업을 했어도 될 일이었다. 일 년 가까이 공부를 넘어 거의 훈련을 했던 영어청취와 영어회화도 학원이 아무리 엿 같아도 그냥 나는 나대로 공부했으면 지금보다 영어 더 잘했을 것이다. 디스크 재활운동으로 했던 척추교정운동. 강사가 다른 센터 강사냐고 물어볼 정도로 잘했던 그 운동. 그때 자격증 따놨으면 주민센터에서 지금 강사라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자격증 과정 열자마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수강료도 세 배 가까이 올랐다. 내가 수험이라는 동굴 속에 처박혀 있을 동안 말이다.


 과거가 말한다. 그냥 한 두 달 고생을 더 하라고 말이다. 고용보험 들어가면 안 되니까 작년에 일하던 식당을 찾아가 볼까. 일용직도 하루단위로 고용보험이 들어가니 어디 가서 단발성으로 일하는 것도 애매하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니면 안 벌고 안 써 볼까. 일단 지금 진행 중인 수업은 들어야 되겠지. 고민하다가 평소의 내가 웬만해서는 잘 선택하지 않았던 방법이 떠올랐다. 사업자를 내는 것이었다.   


그래, 자영업을 하자. 쟁여놨던 예쁜 돌 눈물을 머금고 이쁘게 옷 입혀서 파는 거다. 그리고 국비 과정은 심화반까지 모두 마쳐보는 거다. 그리고 웹소설 작가 되면 네이버에 필명 검색하면 나오더라. 따로 웹소설가가 아닌 그냥 소설가로 말이다. 수업 때 설명해 주는 것을 들어보니 기본반은 시놉시스를 전체 피드백을 해주고 심화반은 원고를 일대일 피드백을 해준다고 한다. 더 망설일 필요는 없는 거 같다.


강의가 공짜라고 좋아했더니 고용보험 미적용자 대상자라 생활비 버는 일이 꽝꽝 막혀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생활비만 목적인 취업은 이제 멈추라는 신호인지도 모르다. 모르지, 스마트 스토어 잘 돼서 더 이상 취업 안 해도 될지. 그랬으면 좋겠다만 세상일에는 언제나 변수가 있었기에 장담을 할 수 없다. 지금은 그저 이 난관을 뚫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이것저것 해보는 거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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