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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Apr 20. 2020

여행길 -후반-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 -18.


여정의 중반을 지나자 구름이 산을 넘지 못하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입을 벌렸더니 귀가 먹먹했다. 전혀 모르는 사이에 고도가 높아진 모양이었다.

이제 우리는 산 가운데로 들어왔다. 널찍한 평지를 따라 도로는 쭉쭉 뻗었고 양옆에는 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조금 춥다. 가끔 도로변에 호텔의 간판이나 무언가를 파는 가게가 드문드문 나왔지만 섣불리 손댈 수 없는 야성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산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빠른 비트에 조금 끈적한 분위기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사정없는 굽이길과 젖어서 새까맣게 빛나는 도로, 이젠 위협적으로 가팔라지는 산 그림자 때문에 거의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승객들은 차의 심한 흔들림에 따라 미세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차가 저 난간 너머로 튀어나가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즈바리 산길의 정상, 출처: 위키피디아의 Alexxx1979


구다우리라고 쓰인 간판을 지났다. 이제 위로 보이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계속 올라간다.


어두운 하늘 아래 거대한 공사 장비들과 유리창 안으로 텅 빈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물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가끔 둥근 털모자를 눌러쓰고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주민 몇 명과 도로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소들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 주었으나 등성이를 넘어가자 곧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골짜기 건너편은 짙은 구름으로 꽉 차있었고 바깥 기온은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오른다.


이제 앞은 하얀 안개로 가득 찼다.



한참 후, 그러니까 지금도, 차 안에서 휘갈겨쓴 수첩을 다시 펼칠 때면 언제나 그때의 초자연적이기까지 한 공포가 되살아난다.

나중에 나는 구글을 통해 구다우리가 스키 리조트 일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키어들 사이에서는 코카서스의 질 좋은 자연설 위를 미끄러지며 스키를 탈 수 있는 멋진 곳으로 유명해져서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얀 안갯속에서 방향성 없이 덮쳐오던 강렬한 압박감도 금방 설명되었다. 구다우리 일대는 해발고도가 2000미터가 넘었던 것이다.


원래 우리의 미니밴은 구다우리 전망대에도 들를 예정이었지만, 운전수는 안개로 한가운데에서 잠깐 속도를 늦추더니 여기가 전망대라고 말해주었다. 원래라면 러시아와 조지아가 친교의 의미로 만든 콜로세움 한 조각 같은 기념물이 서있었을 자리였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 추웠고 하얬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념사진을 찍기는커녕 발 밑도 보이지 않을 판이었지만 운전수는 겉치레로나마 잠시 내려줄까? 하고 물었고, 나를 포함한 모든 일행은 한시바삐 이 길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에 그냥 가자고 말했다. 미니밴은 도망치듯이 속도를 냈다.



구다우리 전망대를 통과하고 즈바리 산길을 조금 내려가고 나서야 안개가 슬슬 걷혔다. 그리고 이전과는 또 다른 전혀 다른 산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에 늘어선 산들은 너무나도 크고, 너무나도 험했다. 여기에서는 어떤, 어떤 적의랄까, 결코 타협하고 관용하지 않겠다는 거대한 의지가 밀려왔다. 누르스름한 풀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산줄기는 붙잡을 데 하나 없어, 마치 짧은 털로 뒤덮인 완강한 생물체의 근육 같았다. 그러나 그 점을 제외하면 시계는 점차 나아졌고 차는 평평한 도로를 무난하게 달렸다.



이 길은 '조지아 군사 도로(Georgian Military Road)'의 가운데 토막이다. 조지아 군사 도로는 트빌리시부터 스테판츠민다를 거쳐 러시아의 블라디캅카스까지 직통으로 이어지는데, 콘크리트로 다져지기 훨씬 전부터 이용되던 역사적인 길이었다. (주로 러시아가 조지아로 쳐들어오는데 이용되었다.)

특히 이, 구다우리의 산악길에서 평지로 내려와 쭉 뻗는 산길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군사 도로'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압감을 지니고 있다. 잿빛 산에 둘러싸인 풍경은 험준하고 쌀쌀맞고, 도로는 획일적이라 이 길로 진군하는 군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심지어 나는 길 너머 평원 안쪽 멀리에서 오래된 탱크로 추정되는 새까만 무언가를 언뜻 보기도 했다.


조그만 시오니 마을에 이르자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래도 트빌리시와 므츠헤타의 느긋한 저지 풍경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불과 두 시간 반 전에 트빌리시를 떠나온 것이 일주일쯤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코카서스의 날카로운 등뼈와 잿빛 구름과 군사적인 암시를 주는 각종 시설물로 이루어진 이곳은 내가 살던 곳, 혹은 내가 가보았던 그 어떤 곳과도 다른 세계였다. 서울에서 트빌리시 사이의 거리보다 이 군사도로가 더 길었다. 처음으로 보는 이것은, 뭐라고 할까... 야성.



나는 드디어 그 단어를 이해했다. 야성. 자연의 거친 성질. '거칠다'는 말이 무엇인지, 눈 앞에 넘쳐흘렀다. 어디를 둘러봐도 안락하거나 만만한 데가 없다. 하늘부터 땅끝까지, 온 천지가. 인간은 계곡을 관통하는 콘크리트 도로를 깔고 터널을 짓고, 드문드문 농가와 공사 장비를 세워 놓았지만 산들이 내려다보는 앞에서 그 흔적들은 너무나 빈약해 보였다. 이것은 자연의 정복이나 개발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버티는 것이다. 이곳의 삶은 저 산들에게서 버텨나가는 것이다.


이곳에 이르러 나는 조지아 사람들더러 독립적이고 강인하다고 했던 역사책의 설명문이나, 내가 여기에서 본 사람들이 모두 작거나 늙었거나 아름답지 않거나의 여부를 떠나 만만찮은 어떤 기운을 가지고 있는 현상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옆을 보니 하루에 한 번씩 트빌리시와 스테판츠민다를 왕복하는 미니밴 운전수는 약간 피곤한 듯 하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여전히 박력을 잃지 않은 운전을 하고 있었다. 평지를 달리고 있는데도 지금 백미러 아래 달린 구슬 장식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한편 뒤에 실린 승객들은 가방을 껴안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거의 시든 채소처럼 맥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때 나는 매우 신비로운 광경을 보았는데, 도로의 정면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의 사면이 구름 사이의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엄청나게 험하고 짙은 회색 바탕에, 정상에서부터 거대한 눈물자국 같은 상처가 하얗게 새겨진 산이었다. 그 산의 정면 한가운데가 도저히 못 보고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크고 밝게 빛나는 것이었다.


차는 그 산을 향해 돌진하듯이 직진했다. 가까이 가면서 산 뿌리 근처에 아주 작은 마을이 보였고 우리는 그리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잠시 후, 이번엔 빛나는 산의 맞은편, 그러니까 차에서 왼편에 있는 산등성이에 아주 작지만 놓치기 힘든 표식 두개 - 그 유명한 네모난 탑과 십자가가 달린 지붕이 보였다.

나는 감을 잡았다.

스테판츠민다. 다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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