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너 이리 와! 이리 빨리 안 나와!
44세 김지영
30년이 넘은 벚꽃 나무가 가득한 우리 아파트는 매년 봄이 되면 팝콘처럼 먹음직스럽게 하얀 벚꽃이 흔들리며 장관을 이룬다. 올해도 변함없이 평화로운 창 밖의 봄 풍경이 햇살을 가득 담아 우리 집 안을 따뜻하게 채운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 일요일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교회 갈 준비를 시작한다. 상쾌한 샤워를 마치고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칠 때, 맞은편 안방에서 아이들과 남편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빠, 아이, 하지 마! 똥집 하면 안 돼! 꺄르르르.”
간만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다. 멀리서 들으면 왠지 더 행복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드라이어 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들리는 아이의 장난치는 목소리가 너무 깜찍하고 귀엽다.
“우리 같이 아빠를 공격하자! 꺄르르르르!”
머리카락 끝을 털어 말리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모처럼 아침부터 화목한 가족의 분위기를 느끼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잠시 생각한다.
그 순간,
“꺅!”
다급하게 들리는 비명소리가 내 귀를 찢는다. 나는 머리를 말리다 말고 드라이기를 던지고, 소리가 뚫고 들어오는 그곳, 안방 쪽으로 달려간다. 복도를 가로질러 거실을 지나며 심장이 두근거린다. 화장실에서 나와 복도를 지나 안방 앞까지 도착하는 그 짧은 2~3초의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울며 안방을 뛰쳐나오는 첫째 아들 기우와 그의 뒤를 무서운 기세로 쫓아 나오는 남편이 보인다. 남편의 손에는 긴 옷걸이 걸이 쇠 막대가 들려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격렬하다.
“너 이리 와! 이리 빨리 안 나와!!” 남편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리고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들 뒤로 몸을 숨기며 남편에게 다가간다. 아들은 내 뒤로 숨어 숨을 헐떡이며, 눈빛은 나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찾고 있다. 그 눈빛은 절망적이고, 너무 두려워 보인다.
“안 돼! 무슨 일이야? 말로 해.” 나는 강경한 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든 모르지만 이 위기 상황에서 내 아들을 보호해야 했다.
“비켜! 빨리 비키라고!” 남편은 나에게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싫어. 내가 비키면, 때릴 거잖아! 안 돼! 말로 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지 마! 빨리 비키라니까!” 남편은 한층 더 분노하여 다시 한번 내게 고함을 쳤다.
내가 아이를 더욱 뒤로 숨기며 고개를 빳빳이 들자, 남편은 더 이상 말로 해서는 안 통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위협했다. 187cm의 거대한 체격을 가진 그가 나를 위협하는 순간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널뛰기 시작했지만, 더욱 결연한 마음으로 몸을 바로 세우고 눈에 힘을 준다. “안 돼. 말로 해. 왜 그래?” 나는 최대한 침착하고 강력한 어조로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때릴 듯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나와 대치했다. 나도 밀리지 않고 소리쳤다.
“왜! 나도 때리게? 어디 한번 해봐!”
“뭐야. 이게!! 까불지 마!” 한순간 그의 얼굴이 더욱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갑자기 두 손을 내밀어 내 가슴을 세게 밀었다. 나는 뒤로 확 밀려서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남편 앞에 섰다.
“비키라니까!! 안 비키면, 너도 죽는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두 손을 뻗어 내 가슴을 더 세게 밀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싫어. 절대 안 비킬 거야. 말로 해!”
그의 얼굴은 점점 더 변해갔다. 격렬한 분노가 뚝뚝 떨어지는 표정.
얼마나 그렇게 서로 대치했을까? 영겁 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남편은 평소의 나답지 않은 기세에 지금 나를 때리면 더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도 뒤돌아 현관을 향해 나가 버렸다.
“쾅!”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나는 갑작스러운 충격과 공포감에 혼미했던 정신을 차려 내 등 뒤에 숨어 있던 아들을 돌아본다.
“아니, 너 얼굴이 왜 그래!!” 얼굴과 손이 피범벅이 된 아들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다.
“안경 벗어봐. 기우야. 괜찮아? 어머! 코피도 나네!”
안경이 눌린 부분에서 흐르는 피와 코피, 그걸 훔치고 있는 손이 온통 피였다.
“엄마, 나 손이 더 아파.”
아들은 나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들의 엄지 손가락이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다.
“손은 왜 그래? 아빠한테 맞았어?”
아들은 말없이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떨리는 손을 쥐고 아들을 안아주면서 혼자 말을 반복한다. ‘괜찮아. 김지영! 쫄지 말자. 괜찮아. 김지영!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