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노 Aug 31. 2021

아내가 싫어하는 전원생활을 하면 생기는 일

마흔네 살 전원생활이 힘든 사연

부모님께서 시골집을 한 채 사셨다. '셋둘'(우리는 아이가 셋, 동생네는 아이가 둘)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부모님은 모자람 없는 전원생활에 흡족해하신다. 우리는 나날이 행복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글 '부모님께서 농가주택을 구입하셨다' 중에서https://brunch.co.kr/@inkistar/80 )


"'셋둘'이 있어서 다행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대 시골집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갈 곳 없는 우리는 시골집에 모였다. 시골집이 없었다면 한 달에 한 번 겨우 봤을 부모님도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뵙고 있다.

"아들. 오이에 물 주는 거 잊지 마."

어머니와 전화 통화는 열두 배 늘었다. 아이들은 마당에 설치한 수영장에서 노는 일에 익숙하고 어른들은 숯불 삼겹살에 맥주 한 잔이 특별하지 않다. 이곳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다들 치열하게 사는데 나는 이렇게 지내도 되나.'

마흔네 살 전원생활은 죄책감이 들 정도로 행복하다.


"잘 됐네. 시골집에 놓으면 되겠다."

건담 프라모델, 칵테일 도구, 여러 종류의 , 게임기처럼 혼자 좋아서 집에 두었던 물건들은 시골집이라는 타협점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제법 어울렸다. 이제는 쓰다가 버리기는 아깝고 활용하기는 막막한 물건들은 곧장 시골집으로 향한다.

"시골집에나 갖다 놓던가."

덕분에 얻은 물건도 있지만 집 앞 '재활용 수거함'과 시골집 사이가 어정쩡해졌다.


아내는 시골집을 싫어한다. 온갖 벌레들과 방음 안 되는 화장실. 집에는 없는 텔레비전과 게임기가 시골집에는 있다. 아내가 시골집에 오는 일은 드물다.

"그럴 거면 시골집이나 가!"

아내가 말썽 부리는 아이들을 훈육하다 불쑥 말했다. 아내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말들에 가슴이 아팠다. 시골집은 어느 사이에 유배지가 되었다. 내 행복의 크기만큼 부부 싸움은 커졌고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아내와의 시간은 줄어들었다. 세상은 언제나 잘 살게 놔두질 않는다.


아이들이 바쁘다. 모두 학교와 학원에 간다. 전원생활도 때가 있는 걸까. 평일에는 시간이 없다.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주말에 쉬지 않으니 기회가 닿질 않는다. 모처럼 쉬는 날은 아이들 기분이 제각각이다. 엄마, 아빠 마음이 달라서 아이들이 쉽게 나서질 않는다. 나는 아이 한 두 명을 데리고 귀양살이를 떠나고 아내는 집에 남아 생이별을 자처한다. 뒤가 개운치 않다. 도착한 시골집에서 아내 없이 아이를 돌보는 하루는 쉼이 없고 정신도 없다. '아내는 매일 이렇게 살겠구나'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나는 왜 사서 고생할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집에 오면 흙투성이 옷과 신발 때문에 아내는 또 힘들어한다.

"신발이 이게 뭐야."

시골집으로 인해 생기는 아내와의 어쭙잖은 기싸움이 나는 싫다.


어머니는 밭일을 전투적으로 하신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도 이틀 만에 밭으로 나오셨다. 중국에 사는 동생이 기겁을 하고 전화해 나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어머니 혼잣말을 들은 나는 말릴 수가 없었다.  

"이제 사람 사는 거 같네."

언제는 농경 시대로 돌아가려는 남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어머니가 더 하신다. 아내는 동지애 사라진 시어머니를 낯설어한다. 어머니 시골집 찾아오지 않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겨났다.


"오이가 왜 이렇게 써."

수확한 오이를 맛본 아내가 말을 건넸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오이가 쓴 건 내가 물을 안 줘서 그렇다. 내가 물을 안 준 건 시골집에 못 가서인데. 오이의 당도가 오갈 수 없는 내 처지를 나타내는 거 같아 안쓰럽다. 먹지 않은 오이와 가지가 냉장고에서 썩어 문드러질 때 내 가슴은 뭉그러진다.

"이게 뭐야!"

가져온 상추와 깻잎에 노란 진딧물이 끼어있 베어 물은 고추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는 날 아내는 소리를 질렀다. 이쯤 되면 운명이다. 결심했다. 농작물 가정 반입에 철저히 수동적 삶을 살기로 말이다. 희한하다. 아내가 하는 못된 소리는 분명 벌레를 향한 것인데 꼭 내 기분이 좋지 않다.

'필요하면 얘기하겠지.'


"가려면 가."

아내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하고 살기를 원한다. 시골집 가는 일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시골집만 다녀오면 아이들 놔두고 혼자 휴양 시설 다녀온 사람 대하는 기분에 허우룩해져 힘이 빠진다. 지인들 만나 술 한잔은 사회생활 힘든 가장의 모습을 반영하지만 한가로운 전원생활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은  놀고먹는 한량의 모습을 자아낸다.

'우린 함께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주말에 가족 모두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 공간으로 시골집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자연과 어울려 쉬고 노는 모습을 바랐다. 하지만 아이들 기분은 저마다 달랐고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사실 나도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나 혼자 행복 찾아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쩌겠나. 아내를 이해한다. 부모님께서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서 장만한 집이지만 안 하던 시집살이를 시골집에서 하는 셈인데 마냥 좋을 리 없다.   


결혼 전 애교 많던 아내는 소심한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자석처럼 붙어있던 아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닮아 멀어졌다. 결혼하고 아이가 한 명 늘 때마다 자석의 극성은 조금씩 변해갔다. 이제는 내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아끼고 위하면 져야 한다. 지금 나와 아이들 나이에 맞는 상황, 아내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전원생활은 조금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즐기는 방법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셋둘'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있어서 좋다. 재미있다. 나는 '셋둘'이라는 아이템을 장착했다. 감춰두었다가 살면서 힘들 때 꺼내야겠다. 뭐 가끔 필살기를 쓸지도 모르겠지만.  


이전 09화 기관사 마음 사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