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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Nov 18. 2024

18-2. 감사

오늘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S네랑 만나기로 했다. 아직 만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가까운 데에 살고 있는데, 이제야 함께하게 됐다. 우연히도 아내가 G병원에 입원한 날 만났던 그들에게 고마움도 표할 겸, 우리 집에 초대해서 점심을 함께하고 아이들끼리도 같이 놀 수 있도록 했다. 오히려 몇 년째 S와 딸의 등원과 하원을 책임지고 있는 각 집의 할머니들이 우리보다 왕래가 훨씬 잦아서 그들의 소식은 간접적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들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S엄마, S아빠와 나까지 세 명은 모두 동갑내기이고, 모두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데다가 다 경남권 출신이라서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았다. 딸은 예전부터 S와 더욱 친해지고 싶어서 같이 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잡았던 약속이 아내가 갑작스레 입원하게 되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될 위기에 처했다. S와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딸의 바람과 나와 접점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충족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시 한번 만남을 제안했고, 그들도 흔쾌히 수락했다. 띵동. 12시경에 S엄마와 S아빠는 S, S동생과 함께 우리 집의 초인종을 울리면서 와글와글 들어왔다. S엄마와 S아빠가 가지고 온 선물 보따리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들고, 딸의 친구들과 친해지는 걸 좋아하는 나는 S와 S동생에게 농담을 던지면서 그들을 맞이했다.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아이들 처음 만나거나 오랜만에 만났을 때, 무조건적인 칭찬을 던지는 것과 다르게 나는 친구를 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관심 가질 만한 질문을 던지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하는 것을 추구한다. 아이는 아이로 대하면, 영원히 아이로 남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엄마가 항상 본인의 육아 철학을 논의할 때 자신 있게 하는 말이 있다. 나와 내 동생을 키우면서 아이를 아이로 대한 게 아니라 어른으로 대했다는 것이다. 그런 철학이 나와 내 동생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 우리의 성격 형성에 크게 기인했을 거라 믿는다. 그게 싫든 좋든 우리 부모님의 철칙이었다고 하니 아들인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자식을 어리게만 봤다면 내가 응석도 많이 부리고 철없이 자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게 주어진 환경이었다. 싫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의 운명이고 팔자일 뿐이다.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크게 바뀌지 않으니 수용하는 수밖에.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경제학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나도 딸과 친구들에게 그저 어리다고 다 해주기보다는 동등한 사람의 입장에서 대우해 주려고 한다. 아이들이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일이 있다면, 해볼 기회도 제공하고 대화할 때 단순한 질문보다는 내가 나의 친구들에게도 할 법한 내용을 한 번씩 던지곤 한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연습도 하고, 생각과 고민을 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이가 많고 직급이 위인 사람의 말에 힘이 과도하게 많이 실리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은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잘 살게 해주는 우산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명하고 슬기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끔 도와주는 안내자이자 지원자의 역할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어차피 지금 고민하고 상처받지 않더라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경험할 일인데, 당장 지켜보기에 조금 힘들더라도 차라리 가까운 어른들과 함께 겪는 편이 우리 마음도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우리는 아이가 받을 상처를 걱정하면서 사실은 내가 겪을 마음의 부침을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화상을 입을까 봐 매번 선제적으로 선크림을 발라주기보다는, 바르지 않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경험과 경각심을 심어주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로에게 이롭다. 부모가 평생 직접 그들의 피부를 직접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이가 항상 내 마음대로 될 거라는 교만에서 비롯되는 근시안적인 행태다.


아이들이 만나서 자연스럽게 놀기 시작하는 사이에 S엄마, S아빠와 나는 정신없이 점심거리를 주문하고 앉아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내가 일반 병실로 옮기고 어제 딸까지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들은 의도적으로 나의 기분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다른 화젯거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듯했다. 나도 뻔히 아는 아내의 병세에 대해서 굳이 분위기까지 가라앉혀 가면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내가 아픈 것 말고도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서로가 만나서 결혼하게 된 에피소드, 아이들 교육과 같은 각자의 관심사들에 대해서 오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아이들은 우리 집 고양이들에게 점심때 먹다 남은 치킨을 주기까지 했는데도 집에만 있기 답답했는지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했다. 모두 적절한 두께의 외투를 걸치고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물 만난 고기가 된 아이들은 놀이터를 쉼 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우리는 놀이터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이야기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원래 딸과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S를 올해부터 영어 유치원으로 옮긴 S엄마, S아빠의 걱정부터 아이들의 향후 미래까지 갖은 화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놀다가 허기지면 우리가 모여서 얘기하고 있던 벤치로 와서 모여서 간식을 먹으면서 왁자지껄 놀았다.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느라 서 있던 S아빠의 어깨너머로 이제 봄이 되고 싶어서 구름 청소에 나선 듯한 푸른색 하늘과 함께, 아내가 M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날 노을 지는 하늘을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서 있었던 바로 그 자리도 함께 보였다. 사실상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이렇게도 다른 감정일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아직 완전한 재활까지 지나야 하는 관문들이 너무 많았지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압축적으로 체험했기에 내게 맑은 하늘과 친구들과 웃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내가 하늘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도 감사한 일이고, 아내가 의식이라도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나의 희망이 이루어져서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딸이 본인의 엄마와 함께 있는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더 어리광을 피우는 것 같기도 했고, 나도 평일에 출근하면서 딸과 가족들을 돌보면서 주말에는 면회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힘겹긴 했다. 그래도 지난 몇 주간 그랬듯 주위의 도움이 있다면 우리 모두 잘 견딜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다.


원래 나는 남들에게 도움 요청하는 것을 매우 꺼리는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의 일이라면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아쉬운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부탁하는 논조의 말을 하면서 까지 이루어야 할 꿈들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았다. 내 능력이 많아서 자체적으로 감당이 가능했다기보다는 그동안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의 일들만 해왔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온전히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 아니었다. 아내만 돌보기도 벅찬데 딸까지 있으니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진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쌓아 올린 덕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주위에서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았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아내가 아파서 우리 가족이 조금 곤란한 상황이라고 전하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나, 필요하면 딸을 봐준다고 하거나, 무슨 일이든 필요한 게 있으면 주저 말고 연락 달라고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크게 감동하였다. 내가 살면서 이들에게 도움이 된 적이 있는지 반성하게 되고,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내가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이들의 친절함을 거절할 여유도 정신도 없었다.


여유를 되찾기 위해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약간의 관심, 조금의 시간만 제공되더라도 그들이 들인 공력보다 훨씬 안정감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도움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타인의 마음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위안이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닫게 되었다. 물론 성격상 무한한 원조를 요청할 수 없었겠지만, 예전 같으면 혼자 죄다 뒤집어쓸 요량으로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했을 지인들의 제안을 한 번쯤은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저 거절하기 전에 감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겸손과 포용을 내재화하여야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받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지닐 수 있다.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들의 종류와 크기가 너무 다양하고 그런 일들을 오롯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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