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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Dec 08. 2024

띵동! 김장 김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김장도 안 하고 쓰는 김장 이야기


우리 집 앞에는 100평쯤 되는 텃밭이 있다.  농사가 업인 사람들에게는 너무 작고, 텃밭을 분양받는 도시농부들에게는 제법 큰 크기다. 남편과 나는 이 텃밭을 묵히는 해가 더 많았다. 남들은 ''라도 심어 먹으라고 했지만, 그것조차 신경 쓰기 힘든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이 묵은 텃밭이 새 주인을 만났다. 서울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이 살림을 도와주러 자주 오시면서  농사까지 짓기 시작한 것이다. 두 분은 나이 팔십이 되어서야 초보 농사꾼이 되셨다. 올해는 배추 농사까지 지으시겠다며 황금 배추 100 포기를 심으셨다.  


황금배추 100 포기가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오늘 쓰는 글의 주제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제목의 글을 썼을 것.

 

'김장 100 포기, 포기해도 될까요?'

'김치는 아삭, 내 허리는 아작'

'누가 저 배추 좀 보쌈해 가세요'


소제목처럼 나는 올해 김장을 담그지 않았다. 그렇다면 텃밭에 심은 배추 100 포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24 절기 중 14번째 절기인 처서가 지난 어느 날.

배추 100 포기가 한 포기도 남김없이 몰살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름하여 배추 독살 사건.

이 모든 화는 초보농사꾼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배추 농사는 자고로 벌레와의 싸움이라며 친정아버지는 배추벌레약, 일종의 살충제를 모종한 배추에 살포했다.  평소 본인이 드시는 소화제, 감기약도 늘 1.5배 용량을 더 드셔야 빨리 낫는다고 믿으시는 아버지는 배추에 치는 약도 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셨다.  희석시켜야 물의 양에 0 하나를 뺐다. 물 20리터에 살충제 한 컵이 정량인 것을  물 2리터에 한 컵을 희석시킨 것이다.  고로 정량보다 거의 10배나 독한 약을 어린 배추에게 살포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배추는 청춘의 푸르른 날을 만끽하지도 못한 채 그냥 타들어가 죽었다. 물을 줘도 소용없고 비가 와도 소용없었다.  엄마의 곡소리는 장례식장 같았다.  많이 주면 좋은 줄 알았다는 아버지의 변명다소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아주 죽일 결심이 아니고서야 인지 능력 저하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배추독살사건으로 인해 직접 농사지어 김장을 하겠다는 두 노부부의 꿈은 사라졌다. 가을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마의 갈비뼈까지 골절되었으니  어쩌면 배추 독살 사건은 오히려 나에게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마터면 독박 김장 100 포기를 할 뻔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몇 해전부터 김치를 사 먹었다. 이상하게 엄마가 김장 담글 무렵에는 꼭 이렇게 아팠다. 어느 해는 허리를 어느 해는 하지정맥류 수술을 했다. 그나마 올해는 몸상태가 나았었는데 갈비뼈 골절이라는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한 것이다. 나는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김장? 그거? 진짜 몸 아프면 하라 해도 못한다. 반대로 배추 한 포기 들 정도만 돼도 어르신들은 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그랬다. 그러니까 부모가 김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배추 한 포기조차 들 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몇 년 간은 김치를 사서 먹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요 근래 브런치에 올라오는 김장 김치 이야기나 동료들이 싸 오는 김장 김치 맛을 보면 20 포기 30 포기 담근 집  김장김치가 먹고 싶다. 김장하던 날 바로 버무린 겉절이에 돼지고기 수육도 먹고 싶다. 내 마음도 이러할진대  친정엄마 마음은 어떠할까?


어느 날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누가 김치를 해줬는데  언니 한 통 보내줄까? 그거 고춧가루부터 배추까지 직접 농사지어서 담근 김치야."

"어머머 너무 좋지"

바로 주소를 불러주는 엄마의 모습이 생소했다. 평소 같았으면, 괜찮다. 너나 먹으라며 일단 한 번은 예의상 사양할 법도 한데 말이다. 오죽 김장 김치가 먹고 싶었으면 염치가 저리 없어지셨을까?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어느 날은 막내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가 묵은 김장 김치를 줬는데 너네 한 통 줄까?"

망설일 겨를도 없이 내 입에서는 너무 좋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머릿속에는 묵은 김치에 삼겹살,  김치두루치기가 떠올랐다.


어쩌다 우리 모녀는 새 김장김치,  묵은 김장김치까지 동냥해서 먹는 신세가 되었을까?


며칠 후 이모가 보내 준 김치 선물이 택배로 도착했다.

두근두근 개봉박두!

뚜껑을 여니

가득 한 통이다. 좋아 미칠 지경이다.

두 손에 비닐장갑을 낀다.

붉은 고춧가루와 파송송 설근설근 무채가 조화롭다.

배추김치 반 통을 집어든다.

주르르륵 김치국물이 떨어질세라

조심조심 아기처럼 두 손에 받쳐든다.


요 근래, 이런 설레이는 선물은 김치~ 니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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