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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능선을 건너며

by 포도송이 x 인자


꿈을 꿨다. 동네 뒷산도 못 오르는 내가 우랄 산맥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사회과부도에서나 보았던 지명, 우랄 산맥. 한때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라며 무작정 외워두었던, 지금은 조용히 지워진 학설처럼 그 낯선 이름을 현실에서도 기억하고 싶었다. 옛 친구의 전화번호를 더듬듯, 필사적으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다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흐릿흐릿한 육체가 노트북 앞으로 걸어갔다. 우랄 산맥을 검색했다. 카자흐스탄 북부에서 북극해까지 러시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위치한 산맥. 갈 수 없겠구나. 꿈에서나 가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흐릿흐릿한 육체에 힘이 들어갔다. 깨어난 김에 우랄 산맥과 티베트 고원을 품은 문장 두어 줄을 적었다. 그리고 소파에 누웠다. 밥을 챙겨줄 사람도, 출근해야 할 직장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새벽잠에 들었다.


십일월의 마지막 날, 은평구의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을 다녀왔다. 도서관 여행 에세이에 실릴 네 번째 도서관이다. 이곳은 윤동주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며, 3층 전체가 시집으로 채워진 시 특화 도서관이다. 다녀온 며칠 동안 나는 윤동주라는 아름다운 청년을 오래 떠올렸다.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생애를 더듬고, A.I가 재현한 그의 모습을 반복해 보았다. 그의 삶이 중년으로도, 노년으로도 이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살아볼 시간이 그에게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를 생각하다 보니, 청년 시절에 멈춰 있던 나의 시도 다시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들었다.


윤동주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출근길, 운전을 하면서 장안불백이라는 가게 앞을 지날 때 본 청년도 떠올랐다. 세 번쯤 봤다. 말쑥하지 않은 옷차림 탓인지, 보행의 불완전함 탓인지 마음이 쓰였다. 부모님은 계신지, 챙겨줄 누군가는 있는지 묻고 싶었다. 두 번째 봤을 때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얼굴을 보았다. 뒷모습만 봤을 때와 달리 제법 나이가 있는 듯했다. 다시 며칠 뒤, 세 번째 보았다. 옷을 바꿔 입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네 번째 만날 때는 따뜻한 깃털을 입은 거위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900번대 서가 앞. 우랄 산맥은 갈 수 없으니 소백산맥이라도 넘어야 하나 싶어 지도를 펼쳐본다.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속리산, 민주지산, 대덕산, 백운산, 반야봉. 제천, 단양, 영월, 충주, 문경, 영주, 순흥, 부석, 단산, 예천. 이름만 들어도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지만, 정작 그 길을 당장 가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800번대 서가 앞. 윤동주 시집을 들춰본다. 자화상, 소년, 눈 오는 지도, 새로운 길, 태초의 아침, 십자가, 길, 별 헤는 밤. 맑은 청년의 시가 조용히 마음을 밝힌다


그때였다. 나무들의 체취들을 몰고 오는 산바람처럼 바람 같은 생각들이 우르르 밀려오더니 우랄 산맥을 가보고 싶다며 떼쓰던 내 영혼을 밀어낸다. 진짜 내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래, 내가 가고 싶은 세계는 우랄 산맥도, 소백산맥도 아니었지.

그런 거대한 세계는 아니었지.

지금보다 한 발만 더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

매일매일 쓰는 삶을 멈추지 않는 것.

장안불백 앞에서 본 청년이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바라보는 것.

내 가족의 삶이 평온한 것.

며칠 후 받을 건강검진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

어제 본 도서관 이용자를 오늘도 다시 보는 것.

매일같이 그 삶의 능선들을 무탈하게 넘어가는 것,

삶으로 출근하고, 삶으로 무사히 퇴근하는 것.

그런 세계야 말로 내가 가고 싶은 세계였지.

그래, 거대한 산맥은 아니었지.


오늘도 나는 내 앞에 놓인 삶의 능선을 천천히 넘는다. 하루의 중턱쯤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삶은 도서관』이라는 첫 에세이집을 내고 분주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




*『삶은 도서관』2쇄가 어제 집에 도착했습니다. 삶은 도서관 2쇄도 계속 사랑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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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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