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을 나서자 짙은 푸른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발끝에 놓인 긴 그림자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벼워 지지도 희미해 지지도 않았다. 다행이다. 어색하게 손을 들어본다. 이렇게 반갑게 손을 들어 처음 인사했던 날이 떠올랐다. 두근거렸다. 깊게 숨을 들이마셔 본다. 몸속 깊은 곳까지 겨울이 스며든다. 이 겨울에 만났던 수많은 기억들이 몰려와 온 몸 구석구석의 세포를 깨운다.
눈이 내린 아침이면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뛰어나갔다. 가장 처음 발자국을 남기는 일은 늘 행복한 순간이었다. 세상의 그림자는 파랗게 빛났다. 모든 소음은 과거의 소리처럼 아득해지고, 멈춰있는 하얀 순간만이 그 자리에서 우리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다. 살아 있는 의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추워서 붉어진 사람들의 코와 귀는 늘 귀엽다. 숨길 수 없는 표정처럼, 어색한 사이의 사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도, 이것만큼은 숨길 수 없다. 기침과 사랑 같은 것이리라.
따뜻할 수 있어서 좋다. 찬 공기를 피해 파고드는 상대방의 온기와,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건 무엇보다 겨울이니까, 설령 오늘의 내가 너무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날을 보냈을지라도, 가장 처음은 온기를 찾게 되는 지금의 계절이라,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반가워, 오랜만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