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 2025년 6월 18일 수요일 -

by 최용수

♡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현악 4중주 14번 라단조 D.810 "죽음과 소녀"/ String Quartet No.14 'Death and the Maiden' D.810>


* 그림이미지 : '죽음과 소녀' (1915) 에곤 쉴레 作


https://www.youtube.com/watch?v=1Cgw_3nhRLo (1악장, 콰르테토 이탈리아노 연주)


(소녀) "지나가세요! 아, 지나가세요! 가세요,

야만의 손이여! 저는 아직 어려요,

제발 가세요! 저를 건드리지 마세요"

(죽음) "손을 내밀어라, 아름답고 부드러운 소녀여!

난 네 친구란다. 벌을 주러 온 것이 아니다.

마음을 놓아라! 나는 사나운 존재가 아니니,

너를 부드럽게 잠 들게 하리라"

(*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 1740~1815)의 시, '죽음과 소녀' 중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소녀... 그리고, 죽음의 달콤한 유혹...

과연 삶의 끝은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죽음뿐일까?

살아있는 자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질문들...


이스라엘과 미국은 결국 이란이 완전 항복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외신이 아침에 눈에 띈다. 그런데, 이미 괴멸적 타격을 입은 이란의 하메네이 정부라 할지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일방적 항복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동안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몰아내기 위해 벌였던 여러 정책들, 이를테면 직접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대신 오랫동안 그들의 대리세력(하마스, 헤즈볼라, 후티반군)을 통한 테러와 분쟁, 그리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던 핵개발 상황까지.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무참한 패배로 드러나고 있는 지난 며칠의 전황(戰況)을 그들이 용납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약자(弱者)를 동정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만, 이번 전쟁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국민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만약 이란의 핵개발이 이스라엘의 공습 전 완료되어 그들이 초보적인 핵무기로라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라도 했다면, 지금 중동과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동정(同情)보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우는 것 같다. 물론 이는 극단적 종교원리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이란 정부에 대한 것이지 이란 국민들에 대한 안타깝고 안된 마음과는 다르다.(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경한 무력 추종자들에게도 인과응보라는 말을 되새기게 해주고 싶지만...)

이란의 핵개발 좌절은 어떻든 이 지역 다른 국가들의 핵무장과 군비 경쟁을 누그러 뜨리게 되면서 단기적으로는 중동의 정정을 안정화시키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면이 더 많아 보인다. 다만 국제질서를 무시하고 주권 국가에 대한 일방적 침략을 감행한 이스라엘의 선례가 향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국제사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간인들의 안타까운 인명 피해에 대한 인도주의적 책임은 또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같은 가볍지 않은 숙제가 남아있다.


1979년 원리주의 이슬람 혁명 이후 종교지도자가 국가를 운영하는 신정(神政) 체제를 유지해 온 이란은 사실 그동안 민주주의적인 법치와는 거리가 있는 엄격한 율법주의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면서 내부적 저항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몰아내고(사실 다른 중동국가들과 달리 터키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지했던 이란이)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신해 (이슬람을 믿는 고작 10% 내외의 시아파의 종주국으로) 중동의 이슬람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이란 종교지도자들의 야심은 국가를 돌이키기 힘든 장기적인 경제난으로 몰아넣었다. 40%를 넘나드는 인플레이션, 극단적인 통화 가치 하락, 그리고 엄청난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군비 지출, 특히 핵개발 비용과 대리전쟁을 수행해 온 프록시 세력(하마스, 헤즈볼라, 후티반군)들에 대한 엄청난 지원금은 국가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이란의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개혁파를 선택한 이란 국민들의 마음은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이 신정(神政) 체제의 이란 정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의 분명한 지분이 되고 있을 것이다.


중동 하면 떠오르는 끔찍한 자살 공격의 이면에 감춰진 종교의 어두운 그림자... 과연 자살 공격자들은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의 약속처럼 죽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아침 내내 중동 소식을 찾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오늘 음악은 '죽음'이란 주제를 다룬 음악을 선곡하게 되었다.




슈베르트 우리가 아는 그 많은 천재 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그리고 이 곡은 그가 죽기 2년 전 완성돼 세상에 나왔다.(출판은 그의 사후 3년이나 지나서 이뤄졌다.) 슈베르트에게 '죽음'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 저주 같은 존재였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음악은 '죽음'의 그림자 위에서 가장 빛났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운명의 속삭임'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평생 그의 뒤를 쫓아다닌 '죽음'과 직접 대면하며 죽음이 속삭이는 영면(永眠)의 유혹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발 어린 나를 못 본 체 지나쳐 가라는 소녀의 간절한 소원에 대해 죽음은 속삭인다. "아름다운 소녀여,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렴. 나는 사납지 않아. 나는 친구로서 네게 온 것일 뿐이야, 너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야. 내 팔 안에서 꿈결같이 편히 잠들도록 하려무나"

이 소녀와 죽음의 대화는 독일 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thias Claudius, 1740~1815)가 쓴 시에 나오는 내용으로 슈베르트는 이 시에 곡을 붙여 동명의 가곡 '죽음과 소녀'(1816, D.531)를 쓴다. 슈베르트는 690여 곡에 이르는 가곡을 작곡해 독일 가곡을 하나의 음악장르로 만든 '가곡의 왕'이었지만, 그는 가곡만이 아니라 다양한 기악곡과 교향곡, 오페라 등의 작품들도 300곡 가까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그가 매독에 걸려 투병생활이 시작된 1823년부터 쓰여진 3곡의 현악 4중주는 슈베르트가 가곡뿐만 아니라 기악곡 장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슈베르트는 모두 16곡의 현악 4 중주곡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시기에 쓰여진 No.13 '로자문데', No14 '죽음과 소녀'가 특히 유명하다)


슈베르트가 14번째 현악 4 중주곡을 작곡하면서 이 곡의 2악장에 그가 이전에 써두었던 가곡 '죽음과 소녀'의 모티브를 변주곡 형식으로 집어넣게 되는데, 그때부터 이 현악 4 중주곡의 표제처럼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무렵 또다시 슈베르트의 삶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슈베르트의 부모는 슈베르트를 포함해 모두 1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슈베르트는 이 중 13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슈베르트는 15살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그의 다른 형제들 중 11명은 세상을 채 만나보기도 전에 어린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어릴 때부터 그의 주변을 떠돌던 죽음이 1826년부터 그의 매독증상이 심해지자 다시 그의 옆에서 영면의 유혹으로 속삭이기 시작한 것이다.

후대 학자들이 슈베르트의 작품 중에서 '죽음'과 연관된 작품을 찾아보니 그가 어린 시절부터 '죽음'이라는 주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가 죽기 2년 전 쓴 '죽음과 소녀'까지 무려 50여 편에 달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죽음과 소녀'는 죽음의 유혹과 이를 뿌리치는 소녀의 두려움을 강렬한 멜로디와 긴박한 리듬, 그리고 극적 긴장감을 이어가는 구성 등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나,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했고, 1994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진실'(시고니 위버 주연)에서 1악장의 강렬한 음악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 앞서 콰르테토 이탈리아노 현악 4중주단의 연주로 강렬한 1악장을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이 곡 2악장의 모티브가 된 가곡 '죽음과 소녀'를 피셔 디스카우의 피아노와 줄리아 발라디의 목소리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KHeM9V4Q2sI


■ 그리고, 말러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을 노르웨이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도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I9QLqs1IY3w


■ 마지막으로 현악 4중주 전곡은 테츨라프 4중주단의 인상적인 연주로 감상해 보자

- https://www.youtube.com/watch?v=CSdlrvC08lM



♡ 전쟁에 대해 쓴다는 것


- 이리나 슈발로바 (우크라이나 시인)


1

그 어떤 혀도 담지 못한다

전쟁에 대해 쓴다는 것 가시 돋친

철사를 천천히 일 센티미터 씩

삼키는 것


꿈속에서 체코 고슴도치를 헐벗은

팔과 다리로 껴안는 것

양철로 된 말들을 산산조각 난 아침의

뼈들에 고집스레 끼워 맞추는 것

죽음 검은 렌틸콩의

아픔 납빛 완두콩의

탄피를 벗기듯 말을 벗기는 것

웅덩이에서

귀를 멀게 하는 굉음을

짙고 붉은 정적을 마시는 것


2

저도 믿고 남도 믿기 위해

더러운 손가락을 상처에 찌르듯 온갖 곳에 혀를 찔러 넣으면

깨진 물병은 물의 진실을 말할 것이고

망가진 무선수신기는

전자기파의 비밀을 밝힐 것이다

현실이 붉은 우유가 되어 끓는다

달아난다

가스레인지에 어두운 흔적이 남는다

시인의 입 텅 빈 냄비가

무력하게 끓어올라 부글거린다

검은 나무껍질이 덮는다


3

혀는 그렇게 경계에 이르고 그 뒤에서

혀는 목쉰 소리 외마디 소리 독수리 울음소리 혀짤배기소리

새떼가 말끔하게 핥은 해골

폭탄을 맞은 극장에 널브러진 목재

보라 혀가 텅 비어 서 있다

사람들이 끌려나와 총살당한 집처럼

보라 나의 말들 잽싼 목발이

저들끼리 걸어간다

보라

저들끼리 춤까지 춘다


4

말하라

말하지 마라

외쳐라 외치지 마라 시인이여

죽음은 어쨌든 듣지 못한다

죽음은 폭발음에 두 귀가 멀었고

죽음은 유탄에 두 눈이 빠져 앞을 못본다

호메로스의 키클롭스처럼

죽음은 앞을 더듬으며 도시를 헤매고

차갑고 끈적끈적한 두 손으로

길에서 우리를 덥석 잡는다

죽음의 거대하고 피로한 몸은

불과 철의 냄새가 난다

죽음 앞에

우리는

아무도 아닌 자


5

시인은

무능의 학교의 졸업생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연약한 우리의 뗏목이

침묵을 더하며

더 깊이 가라앉을 것을 알며

우리는 뗏목에 서서 지팡이마냥

혀를 흔든다 흔든다

절망의 바다를

둘로 나누고 싶어한다

육지를 지나듯

바다의 바닥을 기어

전쟁의 저편으로 건너가고 싶어한다


6

신이여 당신은 알고 있겠지

시인의 혀는 딱 두 가지에 쓸모 있다는 것

죽음 그리고

승리를 노래하는 것

그러니 신이여 우리에게

강철로 된 혀를 다오

아스팔트를 깨끗이

핥아 내겠다

적의 흔적 남지 않도록

핏자국 남지 않도록

굵고 푸른 줄기

기어 나오는

갈라진 틈은 남겨두고


* 번역: 이종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 출처 - https://en-movement.net/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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