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필요한 사람들 시리즈 두 번째 글입니다. :)
튜터링팀에 오랫동안 남기고 싶고, 스타트업에 계신 분들, 또는 변화를 찾는 직장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 보고자 제 경험을 정리한 글을 남깁니다. 글은 아래와 같은 시리즈로 진행됩니다.
들어가며, 성장하는 DNA는 따로 있다.
스타트업에 필요한 사람들 #2.
전문가 이상의 오지라퍼 되기.
오지라퍼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아마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집단일수록 오지랖이 넓어서 자기 영역에 간섭하는 이들을 싫어할 것 같다. 모든 웬만한 회사의 채용 공고에는 협업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찾곤 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만으로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전 직장인 시절 기획자일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디자이너와 개발자, 그리고 기획팀 간의 협업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특히, 아이디어가 하나 기획될 때마다 우선 기획팀의 팀장에게 승인을 받고, 이후 디자인팀에 보고하고, 개발팀에 보고 하는 방식의 프로세스는 모든 일을 더디게 만들었고, 추진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럼 아이디어가 기획되고 나올 때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함께 검토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라고 반문할 수는 있겠다. 문제는 회사의 조직 구조에서 직능별로 팀을 설계하고 각 팀에서 해당 기능의 모든 것을 결정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는 변화무쌍한 서비스 업계에는 더더욱 맞지 않았다.
특히, 내가 기존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당시에도 기획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곤 했는데 당시 가장 많이 들은 지적으로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기획의 업무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서로의 R&R (Role & Responsibility)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월권행위’라는 단어도 그 당시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마치 다른 직군이 내 직능의 업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다른 아이디어를 말할 때 내 전문성과 권한을 침해받은 것과 같은 일시적인 착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프로젝트가 번번이 실패했던 여러 요인 중 하나를 지나친 ‘전문성'의 강조라고 꼽는다. 직능별 팀의 구조에서 해당 직능의 팀장은 당연히 팀을 ‘보호' 아닌 ‘보호' 하는 포지션을 갖게 된다. 이로써 방어적으로 디자인, 기획, 개발, 마케팅 각 업무에 대해 방어기제를 높이게 되고 결국 프로젝트는 추진력을 잃어간다.
“우리 팀 스콥(범위)이 아니에요, 그 일은 기획팀에서 정의해서 주셔야죠”
“디자인이 끝나지 않아서 개발을 아예 시작할 수 없어요, 프로젝트 일정은 모두 미뤄야 하겠네요"
“우리 팀에 이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R&R 정의가 안되어있거든요"
직장인이라면 이런 대화는 흔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특히 R&R 정의가 애매한 신규 사업이나 회색지대에 놓인 프로젝트야 말로 직능 단위 팀 체계가 탄탄한 조직에 서는 거의 실패하게 된다. 대기업에서 신규 사업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조직 논리를 먼저 고민하다가, 항상 속도가 더뎌지고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아왔다.
무겁고 큰 기업에서 프로젝트 실패 경험을 가진 나는 처음부터 전 직원에게 오지라퍼일 것을 강조했다. 애자일이라는 개념은 모두에게 이해시키고 정착하는데 노력하기까지도 어려운 과제이다. 다만 이런 접근은 단순하고 모두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에 신규 입사자가 생기면 늘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 회사에 입사한 이상 당신은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니라 ‘개케터'고, 당신은 마케터가 아닌 ‘마발자’입니다. "
개케터는 개발자와 마케터의 합성어이다.
개발자가 코딩만 잘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마케터와 같이 고객의 관점에서 개발을 하는, 그리고 그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마케팅할까도 같이 고민할 줄 아는 개발자를 의미한다.
마발자는 마케터와 개발자의 합성어로 멋진 카피와 이미지만이 전부가 아닌 마케터, 즉, 제품의 본질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고, 마케팅 캠페인 기획과 함께 데이터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마케터를 의미한다.
기자이너,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를 의미하며 디자이너가 멋진 디자인만 포커스 하는 것이 아닌 제품의 컨셉과 고객의 행동을 분석, 기획할 수 있는 직군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닉네임뿐이 아니다.
이러한 닉네임들을 붙이게 된 데에는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에서 한계를 긋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런 대화가 들려온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매출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 궁극적으로 이 화면에서 고객들이 왜 이탈하게 되는 거죠?” “적어도 이런 제품은 하반기 중에는 나와야 승부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 다 기획팀의 의견일 것 같지만, 사실은 개발자들의 질문과 토론 내용이다.
개발자가 코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개발한 제품이 어떻게 시장에 파급력을 줄 수 있는지를 같이 고민하고 제안한다.
“SQL을 배워서 데이터 기반의 A/B 테스트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데이터 분석 또는 마케터의 의견일 것 같지만 사실은 UX 디자이너들의 의견이다.
각 화면별 구성 요소에 따라 어떻게 고객들이 반응하는지 데이터로 결과를 분석하여 감에 의존하는 디자인이 아닌 정말 시장에서 반응을 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IT 커리어에서 우리 팀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과 같이 비즈니스 이해도가 높고 모든 일에 먼저 나서 주는 팀원들을 만나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마케팅 팀원들과 같이 개발팀을 존중하고 제품에 대해 끝도 없이 걱정하는 팀을 못 본 것 같다.
결국 튜터링과 같이 작은 기업이 빠르게 필요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초기에 잘 성장하게 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문화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갈 것인가는 지금부터 큰 과제로 남아있다.
스타트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 한 분야의 경력이나 전문성의 잣대로만 평가받는 시대는 끝났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소한의 전문성은 기본이고, 그보다 얼마나 빠르게 시장에 도전할 준비와 태도가 갖춰졌나, 다양한 관점의 결합이 가능한지가 중요한 역량이 된다. 오지라퍼 들은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되,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갖고 참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고객과 우리 제품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오지라퍼가 되는 것이다. 디자인만, 마케팅만, 개발만, 어느 한 영역만 잘해서는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전체 목표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오지라퍼가 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에서 오지라퍼를 만드는 과정 중 하나는 ‘프로젝트 회고'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프로젝트가 띄워지면 항상 그 프로젝트는 모든 직군이 다양하게 포함되도록 의도적으로 TF를 구성해서 시작한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킥오프 미팅, 끝날 때는 회고를 하곤 하는데, 회고 미팅에서 모든 직군이 저마다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희한하게도 프로젝트 회고가 끝나면 서로에게 더 미안하고 애잔해진다. 그리고 다른 직군의 노고만 알게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음 프로젝트에서 타 직군들의 목표점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는 회고를 통해 더 큰 효율을 증진시키게 된다.
또 하나의 작전은 ‘타운홀 미팅'이다. 지난번 언급한 ‘쪽대본' 발표는, 다른 직군들의 고민과 생각을 흥미롭게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우리 팀의 디자이너인 A양의 쪽대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A양은 타운홀 쪽대본 시간 15분 동안 모든 직군에게 디자인 툴인 피그마의 숨은 기능에 대해 멋지게 발표를 해주었다.
지루하지 않았냐고? 지루함은커녕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다양한 독특한 옵션들이 마술처럼 디자인 작품에 입혀지는 것을 지켜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심지어 발표가 끝난 후에는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A양에게 따로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운영팀에서도 피그마를 배우고 싶다, 시작해보고 싶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발표 이후 나조차도 가끔 주말에 피그마의 숨은 기능을 찾아보는 재미가 생겼다.
‘일'을 그냥 각자가 처내야만 하는, 지루한 일로서만 남기는 것이 아닌 다른 직군들의 일과 관련된 여러 생각과 시연 과정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들고자 했다.
우리 스스로 오지라퍼가 돼가는 과정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의 가치를 몇 배나 끌어올리는 즐거운 일임을 꼭 강조하고 싶다.
다양한 분야 넘나드는 융합적인 팀이 되려면
TEDWomen 2015에서 Margaret Heffernan이 발표한 ‘일터에서의 서열을 잊어라 (원문 : Forget the pecking order at work)라는 주제에서 밝힌 여러 연구 사례가 매우 흥미롭다.
MIT팀의 실험으로 무엇이 특정 그룹을 성공적으로 만드나에 대한 연구이다. 지원자 몇백 명을 받아서 그룹으로 나누고 아주 어려운 문제를 주었다. 그룹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분석한 결과는 그룹 간 매우 큰 차이를 보였는데 흥미롭게도 고득점 한 그룹은 엄청난 IQ를 가진 사람이 한두 명 있는 그룹이 아니었다. IQ 합산이 가장 높은 그룹이 가장 뛰어난 그룹도 아니었다.
대신 정말 성공적인 팀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먼저 그들은 서로에게 높은 감수성을 보였다.
이것은 눈으로 마음 읽기라는 시험으로 측정되는데 공감능력 시험에 널리 사용된다고 한다. 여기서 높은 점수를 받은 그룹이 더 큰 성과를 보였다.
둘째로, 성공적인 그룹은 서로에게 비슷한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성공한 그룹에서는 한두 명만 주도적으로 말하지도 않고 듣고만 있는 사람도 없었다.
세 번째로, 성공적인 그룹은 그 안에 여성이 더 많았다.
왜냐면 여성이 대체로 눈으로 마음 읽기 테스트에 더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감 점수가 두배는 높기 때문인가, 아니면 더 넓은 관점을 가져왔기 때문인가는 알 수 없지만, 이 실험에서 놀라운 건 우리가 알듯이 어느 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뛰어났는데 그 비결이 서로에 대한 사회적인 유대감이었다는 것이었다.
협동심만으론 정말 부실하게 들리지만 성공적인 팀의 절대적인 핵심입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능력을 빈번히 뛰어넘게 합니다. 협동심은 내가 전부 배울 필요 없이 도움을 주고받는데 익숙한 사람들과 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중략)
제가 방문하는 회사들은 책상에서 커피를 치우고 사람들이 커피 자판기 옆에서 어울리면서 서로 대화하게 합니다. 스웨덴에선 이렇게도 말합니다. 피카라고 해서 커피 시간보다 더 큰 의미로 공동의 회복이라는 뜻입니다. 미국 메인 주에 있는 회사 아이덱스에는 구내에 채소 텃밭을 만들어서 서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같이 텃밭을 일구면서 사업의 큰 방향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들 다 미쳤습니까? 정반대로 그들은 상황이 어려워질 때가 오면, 언제나 어려워질 것이고 진짜 문제를 찾아 돌파구를 만들려면 그들이 필요한 건 사람들의 지원과 도움을 청할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회사는 생각을 못 합니다. 사람들만이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서로 같이 발전시킨 유대감, 의리, 믿음이에요. 중요한 것은 벽돌 하나만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회반죽이에요. 여태껏 우리는 영웅적인 리더가 나타나 혼자서 복잡한 문제를 풀어주리라 기대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리더십을 다시 정의해서 모두가 그들의 가장 대담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판을 만드는 능력으로 불러야 합니다. - TEDWomen 2015에서 Margaret Heffernan 강연 중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욱더 새로운 역할 모델과 전에 없던 전문성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각자가 융합형 인재가 되는 것과 함께 앞서 이야기한 희반죽과 같은 조직 문화와 이를 뒷받침해줄 리더십이 중요시된다. 그래서 우리가 정의하는 DNA는 다음과 같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리추얼을 진행한다.
DNA Description
내 전공 또는 전문분야가 아니어도 전사의 미션 달성을 목적으로 타 분야에 관심과 열정을 갖고 지속 참여하는 성향
때론 희생적이며 이타적인 감성을 지니며 높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사람
리츄얼
각 부서원에게 별명 붙이기. Ex – 마케터를 지속 돕는 개발자, 개 케터 / 카피를 잘 만드는 개발자 – 아이디어 뱅커, 데이터 분석외 개발 설계까지 가능한 - 마발자
프로젝트는 항상 Cross functional 팀 멤버로 구성한다, 즉 다양한 직능이 함께 하도록 구성하며,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회고도 같이 진행하도록 한다. 프로젝트 회고를 통해 많은 직원들이 타 직능 멤버들의 고충을 이해함과 동시에 넓은 시야를 갖게 되는 효과가 있다.
타운홀 미팅에서 다양한 직군의 자유로운 형식의 발표를 유도한다. 정해진 주제는 없고, 다만 자신이 하는 일과 약간의 관련성이 있으면 충분하다. 타운홀 미팅을 통해 다른 직군들의 생각을 탐색할 기회를 열어준다.
저번에 생각지도 못한 큰 관심을 받은 것 같아서, 계속 열심히 연재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글 보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다른 팀의 문화도 궁금합니다.
스타트업에 필요한 사람들 시리즈 링크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