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여행서점도 운영하고 있죠.
어디를 갈지 조사하고, 동선을 계획하고,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여행.
돌아와서 보면 효율적이었고, 할 일은 다 해낸 듯했습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아쉬웠습니다.
어딘가를 열심히 다녀왔지만,
그곳에 머문 기억은 없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떠난 100일간의 배낭여행.
유럽 도시들을 일주일 씩 살아보자 마음먹고 떠났지만
그 마음은 금세, ‘더 많이, 더 빠르게’라는 습관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종착지 파리에서 열흘을 보냈습니다.
여느 때처럼 명소들을 둘러보던 어느 날,
계획도 없이 그냥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렸습니다.
그때 처음, 여행이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카페 앞의 나무 그림자, 낯선 거리의 햇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 풍경들은 목적지를 향해 걸을 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감각이 깨어났고,
그 틈 사이로 새로운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일도 이렇게 하고 있지 않았나?”
계획대로 움직이고, 실수 없이 처리하고,
빠르게 결과를 내는 일.
성과는 내지만, 여백은 없고
일은 했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 하루들.
여행도 일처럼 하고 있었고,
일도 여행처럼 쫓기듯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어슬렁 in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다시 삶의 리듬으로 초대’하는 워크숍입니다.
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리듬.
그것은 걸어보아야만, 느껴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는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느림을 권하는 책이 아닙니다.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내 속도를 다시 감각하는 연습입니다.
‘어슬렁’은 게으름이 아니라,
내 안에 귀 기울이는 방향 찾기입니다.
당신이 오늘 이 책을 펼쳐든 것도,
아마 어딘가에서 조용한 신호가 들렸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루쯤은 어슬렁.
멀리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까운 동네에서, 골목에서, 여행지의 어느 조용한 오후에.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걷는 시간 속에서
당신의 리듬을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도 여행도 우리네 삶의 가치도
종국에는 나만의 흐름을 찾아가는 것 아닐까요.
이제, 함께 걸어보지 않으실래요?
어슬렁, 당신의 리듬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