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뭐길래

나만 지긋지긋한 게 아닐 거다

by 윤혜정

도대체 영어가 뭐길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와 이렇게 지긋지긋한 연을 맺고 있을까.


많은 엄마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영어 유치원을 알아보고, 심지어 그 영어 유치원은 성인 대학교 등록금을 뺨칠 만큼 가격이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어 유치원에 가지 않더라고, 어릴 때 부터 영어 관련 콘텐츠에 노출 시키려, 영상이든, 학습지든, 동화책이든 뭐든 들이밀고 본다.

이제 아이는 초등학생이 된다. 이제부터 학원과의 전쟁이 시작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에서 아주 기본적인 영어부터 배웠던 것 같다.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알파벳부터 배웠다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어 교육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많은 부모님들이 일찍이 영어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아이 영어 교육에 일찍부터 힘을 쏟았던 터라, 아이들이 초1이 되어도 왠만치 영어를 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영어 학원,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일 때다.


레벨 테스트다 뭐다, 학원 진도를 따라 잡기 위해, 학원에서 더 높은 반으로 진급하기 위해, 혹은 애초에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학원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과외를 하는 현상까지 생겨난다.

'사교육을 위한 사교육'이라고 하면 기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또 부모님과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남들 다하는데 외면하기 어려운 노력이다.

영어를 평균 수준보다 잘한다고 이야기가 달라질까?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나는 영어 학원에서 단어 시험을 보는 게 그렇게 싫었다. 100개를 외워서 80점 이상을 못 맞으면 재시험을 봐야하는데, 그럼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지 못하고 학원에 남아 단어를 외우고.... 80점 이상 나올 때까지 마음 속으로 엉엉 울고 짜증 가득한 상태로 중얼중얼 단어를 마지 못해 외우던 기억이 난다.

‘당장 눈앞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단어들을 대충 외우고 뒤돌아서면 무슨 단어가 있었는지도 까먹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며 철저히 귀가에 초점을 맞춘 암기를 기계적으로 했었다.


수능을 친지가 1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서점을 들리면 수능 영어 문제집을 들춰보곤 하는데, 난이도가 생각보다 너무 높아 깜짝 놀라게 된다.

어찌저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이라는 관문을 거치면 이제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대학에서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영어 강의를 확대한다. 영어 강의가 아니더라도 많은 수업들은 여전히 영어 원서를 수업 교재로 사용하고 있고, 많은 대학들이 영어 강의 수강을 필수 졸업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런 수업에서 영어로 된 수업 자료로 학습하고, 과제를 하고, 심지어 발표를 해야한다면 영어가 편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정말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일 수 밖에 업다.


교환학생이라도 가려고 마음 먹으면 교환학생 자격을 갖추기 위해, 혹은 현지에 가서 의사소통과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위한 최소한의 어학 실력은 갖추고 가야 한다.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성인이라고 뭐가 크게 다를까? 토익, 토익 스피킹, 텝스, 토플 등등 취업에서 영어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자격증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여기서 당연히 학원도 많이 다닌다. 시중에 나와 있는 토익 교재나 강의만 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낮은 점수를 중간대 점수로, 중간대 점수를 높은 점수로, 높은 점수를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끌어올리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요즘은 취업에 영어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한국어 취업 면접의 관문을 뚫기 위해 면접 학원이나 스피치 학원을 다니거나 면접 스터디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영어 면접까지 더해지면 취업 준비생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어찌저찌 취업의 문을 뚫었다고 하자. 그럼 이제 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어를 활용하지 않아도 되는 직군에 있으면 상관 없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영어를 사용해야하는 직군이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직군보다 월등히 많다.


뻔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세계화되고 초연결화된 경영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간단한 영어 이메일을 써야하든, 영어 회의록을 읽어야 하든, 심지어 영어로 된 회사 소개 글을 읽어야 하든 영어와 회사 업무와의 접점은 티끌만큼이라도 존재한다.


열 번 양보해서 회사 업무는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췄다고 가정하자. 왜 직장인들은 개인 시간에도 영어 공부에 힘을 쏟는 경우가 많을까?


유튜브에 ‘직장인 갓생’, ‘직장인 자기개발’을 키워드로 하는 브이로그 컨텐츠를 검색해 보면 열에 아홉은 다들 영어 공부를 하고 계시더라. 승진이나 이직을 위한 영어 공부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만족이나 취미로서의 어학 공부를 위한 영어 공부일 수 있다.


운이 좋게도 영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일을 한다고 가정하자. 그런 분들이 아예 영어에 관심도 없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자기개발을 위해 혼자도 공부하고, 유튜브에서 영어 학습 관련 영상이라도 틀어놓으며 영어의 끊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영어를 활용할 일이 크게 없는 우리 조부모님 세대 분들을 위한 영어 교실이 많고 성황리에 운영된다.


나이든, 자신의 근무 환경이나 살아가는 상황이든, 영어 수준이든, 이러한 요소가 모두 달라도 대부분 영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나 스스로 영어의 끊을 놓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새해 계획에 ‘영어 공부’가 왕왕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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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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