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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Nov 02. 2024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기

생략된 그 곳에 우리의 이야기가.

골프라는 운동이 고급스포츠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돈이 많이 드는 이유는, 골프라는 스포츠 자체의 품격과 권위때문이라기 보다는 ‘야외골프장’의 부자연스러움에 기인한다. 무슨 얘기냐면, 고급 골프장이나 명문 골프장은 홀의 구성과 자연경관이 얼마나 훌륭하게 어우러지느냐를 관건으로 결정된다. 넓은 페어웨이, 잘 관리된 잔디, 수령이 오래된 크고 무성한 나무들로 구획된 홀 사이의 경계 등이 그 조건이다. 자연을 누리면서 라운딩을 즐기기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자연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간의 손길과 인공적인 관리가 선결조건인 운동, 그것이 바로 골프라는 얘기. 끊임없이 인간이 개입하고 관리하고 신경을 써줘야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게 골프장의 자연경관인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서울에서 근거리에 위치할수록 라운딩 비용은 물론 회원권도 비싸진다. 서울에서 가까운 도심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 자체가 실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주의는 그 부자연스러운 틈새를 놓치지 않는다. 그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러움으로 탈바꿈하는 간극을 돈으로 메꾸면서 골프를 치는 이들은 시간을 아끼고, 도심에서 자연을 만끽하는 자연스러움을 향유한다. 자연을 느끼고 싶으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과 들로 가면 될 일이다. 허나 시간이 돈보다 귀한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골프장뿐이 아니다. 이런 아이러니들은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  


여기로 이사를 오고 몇몇 친구들을 초대했었다. 그녀들은 우리집에 오는 길에 만난 교통체증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차가 이렇게까지 막히는 데 어찌 사냐는 것이었다. 글쎄, 어찌 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대치동 학원가 근처 도로는 오후에서 밤시간에 걸쳐, 요일을 불문하고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그 뿐이 아니다. 헌릉 IC, 청담대교, 양재대로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곳들은 상시 막혀있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늘 자동차들로 뒤덮여 있다. 그렇다면 강남 사람들은 교통과 공기가 최악이고, 소음에 취약한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인가. 그럴리가. 그들은 도로위 그 길고 긴 자동차 행렬안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걸어서’ 움직인다. 차를 타고 대치동 학원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유유히 걸어서, 5분만에 학원에 도착한다. 그게 아니라도 버스나 지하철로 한 두 구간만을 이동한다. 도로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에 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비용의 최대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비용을 집에 지불하고 있다. 그런 비슷한 이유로 바깥은 소음과 먼지, 빛공해로 가득할지언정, 대규모 아파트나 고급빌라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느 고요한 산사가 이보다 정갈하고 평화로울까. 밖은 아비규환이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 안에서는 바깥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아파트들은 커뮤니티 시설 안에 수영장, 커피숍, 식당까지 갖춰져있어서 사실상 많은 것들이 단지 내에서 가능하기도 하다. 대치동을 걸어서 누릴 수 있는가, 차로 이동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몇 분을 이동해야 하는가, 집 안에서는 어떤 여유를 누릴 수 있는가에 따라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나노단위로 정확히 계량하고 나누는 곳. 네모낳게 구획된 강남의 동네들은 그 계량법에 따라 각각 집값에 이미 모든 것이 반영되어 있다.  


자연스러움을 누리기위해 부자연스럽게 돈을 지불하는 곳. 이 곳에서 나는 그 돈이 아깝다. 아니 ‘나만’ 그 돈이 아깝다. 남편과 골프를 치러 다니게 되면서 필드를 두고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태생이 한량스럽고, 비생산성, 비효율성과 궁합이 잘 맞는 나는 잔디밟는 김에 바깥공기도 쐬고, 라운딩 후에는 근처 관광지에 들렀다가 그 지역 맛집도 가보고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집에 돌아오고 싶다. 타고나길 일복있고, 경제성, 능률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살아온 남편은 속전 속결로 서울 근교에서 후딱 공만 치고 집에 돌아오길 바란다. 그렇게 하면 같은 날 다른 일정을 한두개 더 소화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 역시, 돈보다 시간이 귀한 사람이므로 나는 남편의 말을 따른다. 압구정에 사는 지인과 만날 때 나는 남한산성이나 양평같이 공기좋고 물좋은 근교로 나가고 싶지만 그녀는 그렇게 이동하는 데 시간을 쓰다가는 수다떨 시간이 부족하 돌아와서는 피곤해진다는 이유로 압구정의 한정식집으로 나를 초대한다. 시선을 옮기는 곳곳에  차와 사람이 즐비해 피로도가 높은 그 동네에서 한발짝만 식당안으로 들어가도 떨어지는 폭포수와 잘 꾸며진 조경을 만날 수 있는 곳, 바깥과는 다른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펼쳐지는 곳에서 우리는 시간을 아끼며 마치 이 곳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 양 우아하고 한가롭게 식사를 한다.  동네 엄마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놀러가면 몇배가 되는 돈을 더 내고 줄을 서지않아도 되는 패스입장권을 구매한다. 줄서는 시간을 돈으로 구매한 우리는 입장하는 줄부터 다르다.


자연을 보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떠나는 삶, 시간이 필요한 일에는 시간을 기꺼이 들이는 일상, 차가 밀리면 도로위의 낭만을 한껏 느껴보는 하루, 돈으로 그 모든 걸 대체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인생. 그런 방식들은 이동네에서는 비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거세된다. 당연하다. 그렇게 살아야 남들보다 앞서지 못해도 평균의 삶에 겨우겨우 닿으며 빠듯하게 키재기하듯 살 수 있는 게 우리나라다. 나도 그런 젊은 날들을 보내왔던 것 같고, 남편이 달리기하듯 앞만보며 전력질주해 이동네에 이르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과정이 생략된 채 모든 게 돈으로 계산되는 냉혹한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듯 살아와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삶의 방식 역시 나는 존중한다. 어쩌면 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방향 역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방식에는 분명 생략된 것들이 많다. 자본주의의 가치를 좇기 위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부자연스럽게 생략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인생의 고갱이들은 자본주의가 미처 계산해주지 않았거나,  자칫 계산에서 빠져버린 부분들에 들어있기도 하다. 놀이동산에 다녀와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순간은, 88열차를 타고 절정에 올랐던 그 순간이 아니라 진빠지는 긴 줄에 서서 주고받았던 시답지 않은 농담들이었을 수도 있고, 내 기억에 남았던 한끼 식사는 금방 당도할 수 있는 강남 한복판의 고급 한정식요리가 아니라 네비게이션을 찍고 찾아간 바람좋고 볕좋던 작은 동네의 허름한 밥집이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쉽다니까?"


물론 <더글로리>의 하도영처럼 가장 쉬운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할 만한 돈도 내겐 없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인생은, 수많은 사연과 하루가 모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한 권의 책이다. 그 안에서 성공과 돈이란, 그러니까 클라이막스란 그저 하나의 점이다.  그건 어떤 선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하다. 자연스럽게 선처럼 잇닿은 과정을 밟아가며 느끼는 삶도 내 인생의 한 축이 되면 좋겠다. 결과에만 집중하느라 생략된 이야기와 풍경들에도 귀기울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들어줄 수 있는 이야기의 진폭도 넓고 그에 못지않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누구와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그런 사람이고자 한다면 내 옆의 곳곳에서 편하다는 이유로 빠르다는 이유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생략된 것들, 거기를 다시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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