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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Apr 06. 2024

사랑꾼이 말하는 사랑의 민낯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웃음이 많고 또 그만큼 눈물도 많다. 자랑은 아니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딱히 없어서 여기저기서 조언을 구하고 확인은 받은 뒤에라야 내가 내린 결정에 안심을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조심스러운 점 때문에 신중할 때가 많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이런 성향의 집합체가 나를 이룬다. 눈물 없이 웃음만 많은 나라거나 신중하면서 추진력이 강한 나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나와는 정반대여서 내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줄로 안다.


사람에게는 이처럼 저마다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문제해결이나 감정표현 방식이 있다. 이건 마치 유전자 속에 각인된 디엔에이랄지, 지문과도 같아서 그 이의 고유한 특징이고 어떤 것이 옳거나 우월한가를 가리는 건 무의미하다. 물론, 어떠한 성향이 이성에게 어필하는가, 는 또 다른 얘기겠지만.


내가 부부관찰 예능을 안 보는 이유가 그래서다.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 이상적인 배우자의 자세를 지나치게 틀속에 가두고 정형화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꾼이지만 생활지능은 0에 수렴하는 어리숙한 남편, 그런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한 야무진 아내라는 콘셉트는 사람만 바뀌고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똑같다.

그러면서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지, 아내는 얼마나 행복에 겨워하는지로 마무리되는 그 예능프로그램 보다 보면 참 한결같. 결혼을 해서 아보면 거기에서 표현되는 배우자상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 알게 되는데 말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꾼이란 어디까지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수만 가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사랑에도 솔직할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사랑'이 아니라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이 고갱이간과 한다. 아니 처음부터 알 마음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지상 최고의 가치인데 그걸 적극 표현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어 보일 리 없다.


그렇지만 생각해봐야 한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사랑표현에는 끝 간 데 없이 솔직하고 미움에는 진득하니 속 모르게 과묵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누리는 기쁨과 행복에 순진하고 무구한 이가 슬픔과 절망에 어른스럽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게 가능할 것인가.

그건 사랑봇, ai다. 기계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사랑에 진심인 사람은 짜증에도 진심이다.

표현에 익숙한 사람은 어떤 감정이든 잘 표현한다.

사랑꾼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미움꾼 짜증꾼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괴리감이 없을 이들이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은 내 감정표현에 상대방이 비슷한 강도로 반응하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는 점이다.

내가 하는 사랑표현에, 너도 동참하기를, 그래서 우리 둘이 사랑에 충만하기를 기대하는데 사실 그건 사랑하는 상대를 배려하마음이라기보다는

이만큼이나 너를 사랑하는 나, 그 자신에게 취해있는 감정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나의 절망과 우울에 상대방이 동행해 주길, 깊이 느껴주길, 절절이 공감해 주길 바란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그래서

사랑도 전염시키지만 우울 역시 전염시킨다. 그리고 우울은 사랑보다 전염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원래 나쁜 감정이 더 빠르게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잠식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내 기분의 주인은 온전히 나인데 상대방이 내 기분의 주인이 되어 거기에 좌지우지되는 신기하고 기분 나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으로.


‘사랑꾼’ 이란 어쩌면 감정을 어른스게 처리하는 데 미숙해서, 사랑을 날 것 그대로 유아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 일지 모른다. 연애를 할 때는 그런 표현과 사랑이 나를 더 깊이 사랑하는 징표처럼 느껴져서 상대방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으로 작용할지 모르나 그것이 일상이 되면 그이의 기분에 따라 나도 널을 뛰느라 그런 사랑타령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은 순간이 분명 온다. 사랑이란 변하고, 옅어지고 식는 까닭에 감정표현을 숨기지 못하는 사랑꾼들에게는 그 변한마음 역시 아무래도 숨길 수 없다는 재채기나 가난처럼 쉽게 눈에 띄게 된다.


지금 내가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보자. '사랑꾼이라서'가 유일한 이유라면 나는 일단 반대한다.  위에 말한 모든 사항에 해당되는 사람일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눈물 없이 웃음만 많은 나라든가, 신중하면서 추진력 강한 나, 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나 술은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결코 아니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랑꾼도 그러하다. 그들은 사랑에 진심인만큼 미움에도 진심이며, 사랑에 진심인만큼 증오에도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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