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캉하다

나의 한 단어 23-365

by 푸른킴

가늘고 탄력이 있으며 부드럽다.


1.

지천으로 폈을 이팝나무 제대로 한번 못 본 채

아차 하니 어느새 가을인 듯

구월이 바람 따라 흐른다.

누가 재촉하는 일도 없으니

나도 나를 채근할 필요 없이

느긋한 발걸음만으로 산다.

너무 느슨한가 싶어


한여름
몸 다독여 산도 걷고
바다도 걸었다.
좋은 날들이었다.
돌아와
보기에 좋고, 먹기에 좋은
향 좋은 흑갈색 원두 만들어 두고
카페 한 편에 앉아 바람 가볍게 부는 봄날 거리를 한번 바라본다


2.

어제의 내가 사라지고

오늘 내가 새롭게 태어난다.

늘 그렇지만

나의 하루는 가늘고 탄력 있으며 부드럽다.

얄캉하다.


노란색 물씬한 단어다.

언뜻 피부를 말할 때 딱 어울리는 말 같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삶에 덧붙이면 더욱 좋은 것 같다.

봄바람이 불고 흰 눈 내리는 겨울에 좋다.

가을이라면 더욱 좋다.

느낌도 좋고, 발음도 나쁘지 않다.


3.

얄캉하다

생각하고 탐구해서 남겨진 기억 못지않게

촉감으로 새겨진 기억도

생각보다 오래 흐른다.

사라질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느닷없이 깨어나

온몸을 휘감는다.

삶이 가늘고 탄력 있고 부드럽게 흐른다 해서

그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는 없다.

별일 없이 흐른다 해도

그 삶이 고요히 흐르는

깊은 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가늘과 탄력있고 부드럽게,

나의 길이

얄캉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식월 후 나의 삶 詩 13. 그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