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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S Jan 10. 2020

전화를 잘 받자

2020년의 작은 다짐 

참 오랜만에 쓰는 브런치.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몇년째 연초에 다짐하지만, 
하반기가 되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계획이 흐트러지며 카오스의 시기에 들어가면, 
"돈 받고 쓰는 글도 안 쓰는데 브런치에 글 쓰는 건 무례한 짓이다"라는
자기 세뇌와 밀린 일들에 대한 부담감으로 글을 안 쓰는 패턴이 반복 중이다.
그래서 차마 올해는 '글을 규칙적으로 쓰자'를 새해 목표로 잡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부담감 없이 작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모순된(?) 기대를 가지고...  


도입부서도 잠시 언급한 수많은 슬픈 사례로 인해, 

그리고 2019년 연말 삶의 의지가 지속적으로 떨어질만큼 에너지가 없었던 등의 이유로,
목표와 계획 전혀 없이 시작하는 한 해이다. 

그래도 단 하나의 다짐이 있다면 '전화를 잘 받자'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하거나 사소해서 그게 무슨 다짐이냐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지금까지의 패턴에 큰 변화를 주는 나름 큰 변화이다. 
그리고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 관계를 두려워하지 마자.
둘. 내 책임과 역할을 잘 완수하자.


- 최근 언론에서도 '콜포비아'라는 표현을 쓰며 밀레니얼의 특징이나 앱문화의 발달 등으로 전화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전화가 불편했던 사람이다.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편이었으며, 가능한 전화로 이야기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시절 핸드폰 기본요금 18,000원에 보통 이만원 초반대였으며 20,000원이 넘지 않는 달도 있었다.) 


대화 가운데 순발력도 좋은 편이 아니기에 바로바로 적절한 대답을 하거나 잘 정리해서 내 생각과 의견을 분명히 전하지 못했고,  직접 얼굴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하면 진의(?)가 잘 전달되지 않기에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만핬던 것이 주요 이유이지 않을까. 그래서 아주 사적인 관계나 내 상황이 좋을 때를 제외하면, 전화벨 소리가 나거나 진동이 날 때 두렵거나 부담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로나 메시지 플랫폼을 사용하려고 노력하였고,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넘긴 후에 나중에 문자나 이메일로 응답했을 때가 적잖게 있었다. (부재중 한 통 정도로는 연락하지도 않는 편이다. 두세통 정도 있어야 좀 중요하구나 생각하고 주로 메시지로 연락한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 삶에 자존감을 가진다면, 가끔 불편하더라도 그 사람이 전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 마음이 조금 준비되지 않은 것 같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 더 당당하게 커뮤니케이션했으면 좋겠다.



- 그리고 특히 전화를 안 받는 상황은... 내가 담당한 일을 기한 한에 완성하지 못했을 때이다. 최근 2~3년간 기관이 클라이언트인 프로젝트에 개인(글을 쓰는 것이나 리서치 등의 역할로)종종 참여하였는데... 원래 이야기했던 마감 기간까지 일을 못 끝냈을 때(그리고 임박하였는데 완성의 기미가 안 보일 떄) 전화기를 꺼 놓거나 연락이 와도 안 받으며 그 미칠 것 같은 순간을 도피하는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다. 마무리에 집중하기 위하여, 혹은 기간을 어겼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할 일에 집중한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이게  비겁한 핑계라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마지막에 그만큼 부담감을 느낀다면, 애초에 그런 일을 안 만들텐데 말이다. 


나 개인에게 중요한 일보다 전체에게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성격 등으로 인해(대학 때도 개인 과제는 적당히 넘어가도 조모임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열심히 했던 경험처럼) 팀으로 일할 때는 오히려 평균보다 더 빨리 하는 것 같은데, 이게 이상하게 습관이 들어서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은 계속 미루다가 잠적처럼 보이는 활동을 할 때가 계속해서 일어난다.(나는 규율과 강제가 있어야 일을 잘 하는 타율적인 사람인 건가...)

타인에게는 명확하고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을 엄청나게시리  강조하면서, 일은 당연히 계획대로 안 되지만 사전에 이해관계자간 공유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면서, 막상 나는 그러지 못해서 누군가의 속을 긁어놓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잘 받겠다는 건(혹은 먼저 전화 등의 방식으로 연락하는 건), 내 책임을 정해진 기간 내에 충분히 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을 마감 기한 내에 퀄리티 있게 마치치 못했을 때 자괴감과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 내 성격이 단기간에 변화하기에는 어렵기에, 처음부터 욕심을 좀 줄이고 기간 내에 마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듯 하다. 그래야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부담감과 공포심을 조금 덜 느끼고 정중하고 분명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작년말 특히 제발 전화기가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연락은 부디 이메일로 오기를 같은 마음에서 보여지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나를 지배한 채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2020년엔은 통화하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을 덜 느끼는 관계의 비율을 높이며,
내가 담당한 일에 책임을 잘 져서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죄책감을 덜 느끼면 좋겠다.
(그러려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활습관이 적잖게 바뀌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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