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새겨지는 영원한 무늬
며칠 전 드라마를 보다가 억척스러운 역할의 배우를 봤다. 어린 나이에 딸을 낳고 이혼하고 약간 푼수지만 생활력이 있게 살면서 또 당당하게 할 말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세련 되지 않은 그런 전형적인 서민 미혼모를 연기하고 있었다. 극에 몰입해서 보던 중 그녀가 어느 장면에서 맨발로 등장했다. 그런데 발등에 매우 세련된 레터링 문신이 있었다. 그 순간 극중의 억척스러운 미혼모는 깨지고 우아하고 섹시한 여배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그래 저 배우가 지금 연기를 저렇게 해서 그렇지... 레드 카펫을 걸을 땐 천상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예인이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배추 겉절이에 뿌려진 이탈리안 드레싱을 보는 느낌이랄까?
나는 타투가 없다. 타투를 하겠냐는 대답에는 용기가 없고 게을러서 못했다고 대답한다. 내가 하고 싶은 타투는 근육질의 팔에 상완근 밑에 줄 이나 간단한 무늬를 새기고 싶은데 그 정도의 어깨 근육을 키우지 못했다. 몇 년 전? 아니 이제는 꽤 오래 전에는 문신은 반사회의 상징이었고 폭력의 상징이었다. 이제는 패션 아이템이 된듯 하니 세상의 변화가 참 빠르다.
나 역시 과한 타투를 보면 아직까지도 거부감과 위화감을 느낀다. 또 몸 한가득 무서운 그림이나 불경이 있으면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나는 고대 한자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읽고 나서 '반야심경에 관심이 있냐?', '두보의 시를 좋아하냐?' 물어봤는데 '아니요? 그게 뭐에요 할배 같이?'라고 대답이 나오면 도저히 좋게 보이지 않는다. 영어나 라틴어 레터링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문구가 남이 골라준 다른나라 언어라니 그래서 차라리 그냥 문양이 좋다.
문신도 잘 어울리면 멋지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리 멋져도 남자들의 문신에는 아무 생각도 안든다. 하지만 여자들의 문신에 대해서는 아재답게 이중적으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과하지 않고 어울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람의 이미지와의 조합도 중요하다.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의 사람이 손목이나 발등, 아킬레스 건 사이에 귀여운 별이나 간단한 문양이 있다면 그사람의 캐릭터와 비슷하게 장난기 많고 귀여운 이미지가 더 해진다. 또 하얀 피부의 신비감을 주는 미인이라면 쇄골 사이에 숨어 있는 레터링이나 어깨를 드러낸 옷에 살짝 가렸다가 나오는 간결한 문신은 섹시함과 신비로움을 더한다.
하지만 문신이 영원해서 하는 것처럼 가장 큰 단점도 영원하다는 것이다. 유행을 타는 문신이거나 내 생애의 주기가 바뀔 때 또는 장소를 바꾸지 못한 다는 것은 가장 큰 단점이다. 그래서 헤나가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역시 내 몸에 새기는 영원한 무늬라는 점이 타투의 특별한 점인데 금방 지워질 거면 옷이랑 다른점은 또 뭔가? 하지만 하얀 피부를 따라 시선이 갈 때 시선의 끝에 영화의 클라이막스 신처럼 잘 어울리는 타투가 있다면 마치 감동을 주는 하나의 작품 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한 타투가 있다면 눈물 범벅의 신파극이나 너무 지나친 정사 장면의 싸구려 영화가 떠오른다. 아무리 좋은 것, 아름다운 것도 유행을 잘 타고 있어나 아예 잘 안타고 본인과 어울려야 한다.
얼마 전 다룬 글에서 상해의 고가도로 기둥에 세워진 용무늬 기둥에 대해 다뤘다.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32
그 기둥도 마찬가지이다. 상해에 수많은 도로가 있고 수많은 고가가 있다. 그 고가마다 모두 용무늬를 새겼다면 어땠을까? 그럴싸한 전설 하나 없이 그저 복을 비는 뜻으로 새겨진 무늬들로 가득하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천박하고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상해에서 딱 하나, 사람이 제일 많이 다니는 길목이지만 또 보라고 한건 아닌 것 같은 그런 애매하여 적절한 위치에 새겨진 용무늬는 화려아지 않지만 가끔씩 드러나는 문신처럼 잘 어울린다.
결론은.. 나는 이제 문신이 어울릴 나이가 지나간것 같다. 눈썹이 자꾸 옅어지는데 눈썹 문신이나 알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