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영현 Sep 22. 2023

잠의 풀밭

  잠의 풀밭

 



  눈을 뜨면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

  무엇도 아니라는 생각뿐인데     


  대나무는 나무가 아니고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고 박쥐는 새가 아니고

  아니지만 이름을 벗을 수 없고 바다를 떠날 수 없고 날개를 버릴 수 없다

    

  온몸이 피로로 꽉 차면 딸깍

  스위치를 내리듯 눈을 감는다  

   

  누가 내 잠에 죽음을 탄 걸까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깊이 가라앉는다    

 

  잠은 낱개 포장된 죽음

  낱개의 죽음을 다 써 버리면

  죽음의 원액을 마셔야 할까     


  버둥버둥 버둥거린다 언제 내 다리에 비늘이 돋았나 마른 바닥 물고기가 되어 물 좀 주세요 물 좀 주세요 물 한 컵이면 붕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데

    

  되돌아간다 돌아가서

  다시 낯선 이름으로 꿈을 꾸고     


  어쩌면 나는 잠이 피워낸 풀 한 포기

  내 뿌리는 언제나 잠을 움켜쥐고 있다




-[모던포엠] 2022년 12월호.

이전 13화 까마귀 숲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