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나무 아래 벤치
너는 옹이를 딛고 올라가고 싶다.
가지에 앉아 숨어 있기 위해서.
무엇으로부터 숨으려는 걸까.
내가 묻기도 전에
스키니 바지가 죄다 작아져서
오늘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왔어
너는 이야기하며 계속 올려다본다.
보고 있으면 몸이 떠오를 것처럼.
괴애액 괴성을 지르며
크고 하얀 새가 날아와 앉는다.
비현실적이다. 도심에서 고함지르는 하얀 새라니.
그러나 새는 바로 위에 있다.
하늘이 어두워진다.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무언지 생각나지 않고.
새가 되면 좋을까, 너는 묻고
나는 새들에게는 새들의 고난이 있을 거라고
말하고 만다.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금세 후회하지만.
왜 저렇게 큰 소리로 우는 걸까.
새가 곡을 하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어째서 하얀색일까.
무서운 게 없는 걸까. 숨지 않아도 될 만큼.
새똥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위를 쳐다보는 동안
유행이 다시 돌아오고 스무 살처럼 살을 빼서
스키니 바지를 다시 입을 수 있을지에 대해
너는 이야기한다.
마치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문장웹진_콤마」『문장웹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