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칠판도 우습게 생겼어요

웃음은 눈물이 보내는 해맑은 얼굴입니다

by 최형식

옥동자를 빼다 박은 우리 반 변모 군이 울고 있습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못 말리는 개구쟁이지만 덩치답게 의젓한 면도 있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는 녀석입니다. 그런데 변 군이 울고 있습니다. 아예 책상 위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고 있습니다.


내가 묻기도 전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발단은 애초에 장난을 좋아하는 변 군 탓입니다. 괜히 장난기가 발동한 변 군이 자기 엉덩이 방귀를 손아귀로 잡아 키 작은 아이 1의 코에 갖다 댔다고 합니다. 불의의 가스 습격을 당한 아이 1은, 옆에 있던 키 작은 아이 2에게 '변 군 똥 쌌다'는 보복성 유언비어를 유포했습니다. 아이 2는 역시 제 키 만한 아이 3에게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키 작은 아이 1, 2, 3이 합세하여 키 큰 변 군을 향해 "정말 똥 싼 것이 아니냐?"라고 놀렸다고 합니다.


변 군은 자신이 저지른 장난으로 꼼짝없이 보복을 당한 것입니다. 보여주지 않는 한 증명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차마 보여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변 군은 펑펑 쏟아지는 눈물로써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도토리만큼 엇비슷한 키 작은 아이 셋을 불러냈습니다. 비겁하게 세 명이 한 명을 몰아붙이는 왕따 수준의 죄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변모 군을 포함한 네 명에게 각자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교실 앞쪽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이들이 반성 시간을 갖는 동안,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아 교탁에 쌓인 일기장에 도장을 쾅쾅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3 분단 김모 양 일당들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벌 받고 있는데 웃고 있다니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지시봉으로 교탁을 내리치고 촉새 일당을 불러냈습니다. 왜 웃느냐고 물었더니 “왠지 그냥 앞에 서 있는 친구들이 웃기게 보여서”랍니다.


웃음보가 터질락 말락 하던 촉새 세 명은 꿀밤 한 대씩 먹고 자리로 들어가면서도 쿡쿡거립니다. 나 원 참. 기가 막혀. 다시 불러내어 야단칠 힘도 없습니다. 에휴... 한숨을 쉬면서 벌 받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도토리 세 개를 딱 맞춰서 세워 놓은 것처럼 키가 똑같은 아이 셋, 그 사이에 타조 목처럼 뻘쭘하게 솟은 한 아이의 모습이 우습기는 우스워 보였습니다.


교실 여기저기 웃음이 터졌습니다. 벌을 받고 있던 녀석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었습니다. 나는 도토리 세 개와 타조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애들아, 너희들 보고 킥킥거리는 저 녀석들이 더 웃기게 보이지 않냐?"

아이들 넷이 헤벌쭉 웃으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다소 풀어진 분위기를 틈타 누군가 재빨리 한 마디 거듭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도 웃기게 보여요."

"뭐시라? 아쭈구리?"

"선생님, 칠판도 우습게 생겼어요. 한번 보세요."

"야, 창문도 엄청 웃기다."


마침내 녀석들은 서로의 얼굴을 가리키며 자지러질 듯 깔깔거렸습니다. 눈에 띄는 모든 사물이 우스워 죽을 지경입니다. 도토리와 타조도 촉새들이 허리를 잡고 웃습니다. 너무 우스워 눈물이 나는지 눈가를 훔치며 깔깔대는 아이도 보입니다.


울다가 웃으면 뭐가 난다고 놀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떤 때, 아이들의 울음은 비폭력이요 화해입니다. 웃음은 눈물이 보내는 용서의 해맑은 얼굴입니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던 나는, 그해 울다가도 웃는 법을 어린이들에게 배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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