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장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 수업을 할 준비가 되었는데 우리 반 아이 네 명이 오지 않았다. 어린 양들의 행방을 두고 한참 설왕설래하고 있는데, 교실 문이 활짝 열리고 아이들이 들어섰다. 헉헉대는 녀석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딱 보니 꼴이 말이 아니시다. 완전 물에 빠진 생쥐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 녀석들은 수돗가에서 물장난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하긴 물장난만큼 재미있는 장난도 드물긴 하다. 소싯적 여름날, 동생들과 마루 끝에 앉아 장대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뻗어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받다가, 급기야 옷을 홀라당 벗어던지고 온몸으로 비를 맞던 유년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나는 미리 경고했다. 학교에서 물장난은 안 된다. 왜? 첫째, 다친다. 신나게 뿌려대는 물에 골마루가 젖어 누군가 미끄러져 머리통 깰 수도 있다. 둘째, 너희들은 6학년이다. 철없는 동생들이 따라 한다. 최고 학년답게 놀자. 셋째,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다. 물을 낭비하면 안 된다. 그런데 너희들은 오늘 그것으로도 모자라 수업 시간마저 늦었다. 자, 손바닥 펴라!
“선생님, 저는 억울해요!”
맨 끝에 서 있던 주현이가 제법 용감하게 항의했다.
“왜?”
“저는요, 민종이 바지가 찢어져서 아이들이 못 보게 가려 주다가 늦었어요.”
그러고 보니 민종이가 보이지 않는다.
“민종이는 지금 어디 있는데?”
“화장실에요.”
대체 얼마나 찢어졌길래? 나는 지각생들에게 ‘두 손 들어!’를 시키고 화장실로 가보았다. 텅 빈 화장실에 엉거주춤 길 잃은 양 한 마리가 있었다. 녀석은 두 손으로 찢어진 바지를 가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역시 물장난이 원인이었다. 온통 물에 젖은 채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잡으러 가고, 가랑이가 찢어져라 달렸으니 물 먹은 바짓가랑이가 견딜 재간이 있나. 내 생전 그렇게 적나라하게 밑이 터진 바지는 처음 보았다. 너덜너덜 찢어진 바지 사이로 줄무늬 속곳이 다 보였다.
“꼼짝 말고 여기 있어라.”
나는 교실로 돌아와서 벌서는 녀석들을 꿀밤 하나씩 날려 자리로 들여보내고, 교사용 책상 서랍을 뒤져 옷핀을 찾아서 화장실로 갔다. 꿩 대신 닭이요 바느질 대신 옷핀이다. 먼먼 옛날, 고등학생이던 내가 자취할 때 솜씨를 이럴 때 써먹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선생님은 밖에서 기다릴 테니, 너는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바지를 벗어 선생님한테 다오.”
아이는 고분고분 지시에 따랐다. 잠시 후 화장실 문이 빼꼼 열리고 밑이 터진 바지가 슬그머니 나왔다. 나는 바지를 뒤집어 옷핀으로 봉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이를 못 참고 우리 교실에서 왁자지껄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꿰매던 바지를 화장실 창문에 걸쳐 놓고 교실로 갔다. 이 상황에 떠들어대는 눈치 없는 녀석들을 마구 꾸짖고, 교과서를 펴게 하고, 과제를 내주고, 다시 화장실로 왔다.
마침내 옷핀으로 얼기설기 기운 바지를 화장실 칸 안으로 들여보냈다. 속곳 차림으로 쓸쓸히 서 있던 민종이가 그제야 해방된 표정이 되어 나왔다. 앞태 뒤태를 살펴보니 전혀 표가 나지 않았다. 나는 으쓱해져서 ‘아가야, 이런 솜씨를 두고 옛사람은 천의무봉이라고 했단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 자랑 같아서 참았다.
우리가 교실로 들어가자, 목하 자습 중이던 눈빛들이 모두 민종이 바지에서 반짝거렸다. 아는 척 모르는 척 수업은 시작되었고, 우리 반은 평정을 찾는 듯했다. 그런데 수업 중에 민종이가 자꾸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녀석의 작은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눈이 또 그쪽으로 쏠렸다. 할 수 없이 책을 놓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아이 곁으로 갔다.
“왜 그래, 친구들이 너보고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괜찮아. 괜찮다니까”
내가 그렇게 달랬지만 녀석은 어깨는 더 요동치고 있었다. 너무 창피해서 제풀에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달래 줄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며 어깨만 토닥거려 주기만 했다. 난감했다. 그때 교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우리 반 반장 정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그 소리에 따라 일정한 박자로 하나둘씩 합쳐지는 아이들 목소리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결승 경기에서 석패한 국가대표들을 향해, 고국에 계신 동포들이 한목소리로 위로하는 합창과 비슷했다. 나도 느꺼워져 민종이의 어깨를 안았다.
“봐라. 친구들 모두 괜찮다 하지 않니. 그러니까 울지마. 응? 울지마라니까.”
그랬더니 또 다시 우리 반 아이들이 내말을 받아 한목소리로 받아 응원했다.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예전에 연말 가요대상을 트로피를 안은 가수가, 힘든 지난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을 때, 열성 팬들이 외쳐대는 “울.지.마! 울.지.마!”와 흡사했다. 나는 좀 우스웠지만 웃지 않았다. 아무튼 그게 효력이 있었는지 민종이는 울음을 그쳤고, 나중에 쉬는 시간이 되어서는 다소곳이 앉아 방긋방긋 웃기까지 하였다. 다사다난한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쉬는 시간에 교사 휴게실에 갔을 때다. 휴게실 안쪽에 아이 한 명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보나마나 장난치다가 선생님한테 걸려 벌서는 중일 거다 싶어서.
“이놈 또 말썽 피웠구나.”
그랬더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요. 바지가 찢어져서 담임선생님이 갈아입을 옷 구하러 가셨답니다.”
또 바지냐? 전생에 죄를 많이 지으면, 열세 살짜리 남자아이의 바지로 태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어제 유용하게 활용한 옷핀 다섯 개가 떠올라, 재빨리 교실로 돌아와 민종이를 찾았다. 민종이는 오늘도 책상 사이를 줄달음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어이, 김민종! 옷핀!”
“예?”
“어제 네 옷 꿰매 준 옷핀 말이다. 다섯 개!”
“어! 그거... 아직 여기 있는데요”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제 바지를 가리켰다. 아뿔싸! 어제 그 바지였다. 옷핀으로 꿰매어준 그 바지. 혹시 남의 귀한 자식 소중한 것 다칠까 봐 노심초사 걱정하던 그 옷핀. 나는 다시 간이 조마조마했다. 아니 대체 왜 옷을 안 갈아 입고 그냥 왔냐고 물었더니 대답 또한 간단명료했다.
“깜빡했어요.”
그날 나는 이 용감무쌍하기 짝이 없는 녀석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사는 거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은 바로 어제 일이라도 까맣게 잊고 사는 거다. 물놀이를 해도 괜찮고 바지가 터져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다. 무럭무럭 건강하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