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등껍질에 얼굴을 묻으면

소나무의 눈물

by 키작은 울타리

등 굽은 소나무 가지마다 세월이 굽이쳐 흐릅니다.

시간이 첩첩이 쌓인 등껍질에 얼굴을 묻습니다.

한 발 한 발 발을 디뎌 아래로 내려갑니다.

깊은 골 부드러운 속살에서 슬픈 향기가 목구멍으로 퍼집니다.


오래전 뒷산에 늙은 소나무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소나무 가슴팍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는 나무가 오래 살면 저절로 몸에 굴이 하나씩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산속을 쏘다니다 소나무 속살을 벗겨 오래오래 씹었습니다.

사막 같은 목구멍으로 촉촉하고 달콤한 향기가 퍼져나갔습니다.

다음날 소나무는 혼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그날도 그렇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등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할퀴어 가슴에 큰 생채기가 생기던 날.

나무는 중력을 거스르는 눈물을

몇 날 며칠 뚜-우-욱-뚝 흘렸습니다.

눈물까지 빼앗겨야 하는 운명 앞에 선 저항이었습니다.


모진 세월을 견디고 하늘에 푸른 병풍을 친 소나무 앞에 서서

아물지 않은 상처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어릴 적 뒷산에서 눈물 흘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제 몸을 상하고도 어린아이에게 보내던 그 미소가 그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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