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 42.195km 서울을 달린다 - 07.

서울마라톤. 봄의 서울을 달렸다

by 아이언파파

대회 당일이다. 대회가 있는 날마다 그랬던 것처럼 출발 시각보다 4시간 이전인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났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체중계에 오르는 것이었다. 70.4kg. 내 키가 177cm이니 키 - 몸무게 107이었다. 이번 겨울에는 러닝 운동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수영과 사이클을 병행하며 체중 관리에 애를 먹었는데(물론 과한 식탐을 조절하지 못한 나 자신의 탓도 있다), 서울마라톤 대회 직전까지 ‘마라톤을 위한’ 체중 관리는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동호인으로서 제대로 된 기록에 도전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것은 키 - 몸무게 기준 112~115, 최소 110은 되어야 한다. 그 수치가 107이라는 것은 111의 몸 상태일 때보다 2리터 물통을 두 개를 몸에 들고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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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레이스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인터벌과 장거리 달리기(LSD)등 매주 수요일과 주말의 포인트 훈련은 소화해 냈지만 유산소 조깅 량으로 결정되는 절대적인 운동량이 이번 겨울 부족했고 체중마저 마라톤을 하며 두 번째로 무거운 상태로 대회에 나간다. 오늘은 예보 상 바람도 많이 분다고 한다. 마라톤을 비롯한 유산소 지구력 운동에서 과거의 기록과 예전의 기량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항상 기준은 지금의 몸 상태와 실력이다. 이전의 나를 생각하며 마음만 앞서면 초반 오버페이스로 지옥 같은 레이스를 펼치며 기록 또한 놓치게 된다. 오늘은 출발 후 1km 당 4분 5초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며 체력과 힘을 아끼고 아낀 다음 30km 이후 3분 55초 이상의 페이스로 올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아주 운이 좋다면 2시간 50분 이내 기록이 가능할 수도 있다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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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장에는 출발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탈의실에서 복장을 정리하고 주변의 마라토너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묘하게 대회 당일 특유의 긴장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게 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대회 준비의 과정이 정신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6시 10분쯤 출발지인 광화문에 도착하고, 준비를 하였다. 출발 1시간 전인 7시 조금 넘어 웜업을 하며 체온을 서서히 올려주었고, 다시 한번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전 서울마라톤에서 풀코스 서브 3을 달성했던 마라토너들은 ’ 명예의 전당‘ 그룹에서 출발한다. 8시 정각, 엘리트 선수들과 명예의 전당 동호인들이 함께 출발하였다. 봄 축제의 시작이다. 준비가 부족한 만큼 여러모로 두렵기도 하지만 이 과정도 즐겨보자, 마음을 다잡고 숭례문을 향하여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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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후 30km 지점까지 약간의 오르락내리락이 있었지만 거의 비슷한 페이스로 계획대로 달려 나갔다. 다행히 몸 상태에는 여유가 있었다. 코스 후반 군자역에서 서울숲 방향으로 향하는 구간에서 오르막 이후 좌회전 내리막을 마치는 33km 부근에서 페이스를 올려보기로 한다. 3분 55초~4분 00초 페이스로 달리며 이 구간에서 많은 분들을 추월하였다. 매년 봄마다 마라토너들을 지치게 만들었던 성수동 구간을 지나 큰 도로에서 우회전, 잠실대교로 향하는 길로 들어선다. 오늘 대회에서는 구간구간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고생했던 적이 꽤 있었는데, 특히 잠실대교가 시작되는 이 지점부터는 정말 강한 바람이 불어 오늘 많은 마라토너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서울마라톤 최대 응원 구간인 잠실대교에서 열광적인 응원의 기운을 듬뿍 받고 마지막 최선을 다한 질주를 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오늘 나에게는 이 강한 바람을 뚫고 속도를 더욱 올릴 만한 체력과 실력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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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까지 약 3.2km를 남긴 39km 지점에서 전체 기록시간이 2시간 4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2시간 50분 이내는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는 풀코스 3시간 이내에서 스스로 기록을 5분 단위로 나누어 판단하는데, 2시간 50분 이내는 어렵지만 2시간 55분 이내는 무난하다고 생각하고 남은 거리를 달려 나갔다. 잠실대교 이후 피니쉬 지점인 종합운동장으로 향하는 잠실대로는 오늘 대회 최고의 역풍 구간이었다. 순간순간 5분 10초까지 밀려버리는 GPS시계 속 페이스 수치를 보며 슬슬 겁이 났다. ‘이거 이러다가 2시간 55분도 못할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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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마지막인 41km 지점 이후부터는 전력으로 달렸다. 이전 마라톤에서 마지막 전력 구간은 아무리 지친 몸 상태라도 3분대 페이스로 달리곤 했는데, 오늘은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며 달렸지만 4분 40초 정도의 페이스가 나와 당황스러웠다. 매 대회마다 피니쉬 지점에서 응원하는 아내와 아이를 찾아보고 혹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놓칠까 봐 귀를 기울여 봤지만 우리 가족 응원은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피니쉬. 2시간 54분 23초. 휴 겨우 2시간 55분 이내에 마쳤다. 와 오늘도 정말 힘들었다. 하하 그런데 기분은 좋다. 후련하다. 아내와 아이는 피니쉬 지점 이후 물품보관소로 가는 길에 있었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도 찍었다. 아이는 아빠가 늦게 들어와서 오래 기다렸다며 투정 부린다. 미안해. 아빠가 최선을 다했지만 오늘 좀 늦었어. 이런 날도 있잖아. 오늘 응원 와줘서 고마워. 아빠는 경기 마치고 이렇게 가족과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해.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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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오늘 계획했던 일정 대로 용산 꿈나무종합타운 도서관에 갔다. 요즘 아이가 마법천자문과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 시리즈에 흠뻑 빠져있다. 몇 권의 책을 빌리고 귀가하였다. 나는 전형적인 집돌이라 매일매일 집에 돌아오는 순간이 무척 행복한데, 오늘은 특히 대회 끝나고 식사와 도서관 일정으로 평소보다 더 지친 느낌이라 집에 오니 훨씬 더 행복했다. 샤워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우리 아파트 분리배출일이라 재활용품을 갖다 버리고, 나도 이번 주에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으며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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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봄 축제는 이렇게 끝이 났다. 매 대회 복기를 할 때마다 반성하고 개선할 점들이 많지만 이번에는 체중 관리, 감량에 더 공을 들여볼 생각이다. 때마침 4월 전국생활체육축전 3종 대회에 서울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기 때문에 책임감과 부담(?)을 가지고 절실히 체중과 실력 등 몸 상태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이 큰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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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몇 가지 새해 계획 중 ‘독서 다짐’으로 올해에는 매월 또는 매주 분야별로 주제를 정해서 집중 도서를 해보겠다 마음먹었고 실천 중이었다. 3월에는 철학책들을 읽었는데, 무겁고 진지한 철학이 아니라 청소년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서였다. 1주일에 두 권씩 읽고, 이번에는 나 자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2주 동안 읽었던 완독 직후 바로 다시 한번 더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학생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읽어봐야 할 책들이란 생각을 하였다. 단순히 철학자들과 그들의 이론 등을 나열한 책이 아닌, 아이들 그리고 어른까지 사람이 살아가며 흔히 고민하는 사랑, 용서, 관계, 질투, 포용 등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생각해봐야 할 주제들에 대하여 한 번쯤 짚어보고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소중한 책들이었다. 조금 더 나은 일상을 위해 매일 운동 취미를 즐기고 이어가는 것처럼, 더 좋은 삶을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항상 자신을 살펴보고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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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교사는 “철학은 인생의 작전타임이다 “ 하였다. “모두가 유용함과 실용성에 매달리는 시대일수록 문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삶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철학의 작업’은 삶에서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철학을 공부할수록 자신이 공부하려는 학문이 풀어내려는 가장 깊은 문제와 고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며 “어떤 공부를 하건 폭넓고 심도 있게 탐색하기에, 새로운 생각을 통해 남다른 대안을 찾을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철학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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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또한 내 일상의 작전타임과도 같다. 이런 대회를 통해 나 자신을 점검한다. 평소 생활 습관에서 제거해야 할 나쁜 것들은 없는지, 개선시켜야 할 점들은 없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대회 한 번 참가했을 뿐이지만 일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고 삶을 마주하는 인생관이 달라지기도 한다. 안 해 본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는데, 해 본 사람들은 이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상하고 묘한데 신기하기도 한 것이 이 운동이다. 오늘 만족했든 못했든 마라톤 봄 축제에 참가한 모든 마라토너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길, 내일의 일상을 더 행복하고 힘차게 나아갈 뜻깊은 작전타임을 가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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