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말’을 통해 나를 치유한 시간

백수 엄마의 이력서

by 루니

퇴직 후 1년.

공개된 이력서를 통해 또 한 번의 면접 제의가 왔습니다.

중견기업이라 그런지 이번엔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아 순조롭게 면접과 인사면접을 대화하듯 즐겁게 마무리했습니다.

별 기대 없이 본 곳이라 그런지 집에 오는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면접 후 이틀이 지나가자, 내 안의 두 개의 목소리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허세와 불안 사이에서

"나 같은 사람 안 뽑으면 손해지! 내가 아쉬운 건 없어. 느긋하게 준비하던 거 계속해!"

첫 번째 목소리가 당당하게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두 번째 목소리는 현실과 두려움을 가득 담아 자신 없이 말했습니다.

"이직 사유를 집요하게 물어봤는데... 안 뽑히면 어떻게 하지? 내가 더 잘하겠다고 할걸 그랬나? 이대로 계속 모아둔 돈만 쓸 수는 없는데..."

허세 가득한 첫 번째 목소리와 현실의 부족한 돈을 의식한 작아지는 두 번째 목소리. 이 둘이 서로 교차하며 내게 말을 걸 때마다, 나는 탈락의 메일이 왔을까 두려워하며 메일함을 확인하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합니다. 면접 제의가 왔을 때 분명 기뻤고, 면접도 잘 보고 왔는데... 왜 이리 불안하고 초조할까요?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마치 행복해질 권리가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그런 이상한 기분.

나는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거절당할 수 있다는 상처를 미리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벽을 쌓고 있었다.

저녁, 남편과 술 한잔을 나누며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이번에도 리더 여부를 묻더라. 그래서 이번엔 리더 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어.

하지만 합격할지는 모르겠어."

남편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어차피 리더를 할 수밖에 없는 경력이고, 이미 리더 경험이 있으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그리고 프리랜서 준비하고 있잖아. 홈페이지도 다 완성되었고, 그러니 안 되면 프리랜서로 그냥 전향해!"

평소 취업하라고 재촉할 때는 언제고, 이런 위로를 건네니 얼떨떨하면서도 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멍하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가 회사에 미련이 있는 걸까?"

"내가 리더 하고 싶은 것이 맞나?"

"내가 회사 신규 프로젝트를 잘 이끌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과연 리더 자질이 있는 사람일까?"


그런 물음을 던지자, 그동안 내가 리더로 활동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밤새워 문제를 해결했던 날들, 어려운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던 순간들, 그리고..

이런 과거를 회상하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알아서 리더 역할을 하니... 직책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직 면접 결과도 안 나왔는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웃기지만, 내가 많이 회복되었다는 것이 깨닫자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남편 말대로 안 되면 준비하고 있던 프리랜서를 더 진행하면 될 뿐이고, 합격되면 회사 다니면서 강사 준비하면 될 뿐인데 말이죠.


새로운 단단함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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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동안 스스로를 못 믿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결정이 아닌 누군가 확정해 주는 상황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면접에 떨어지면 프리랜서 하라는 계시다!'처럼요.


아직도 나는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누군가 이끌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선택 앞에서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운명'이나 '계시'에 맡겨 안전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나 스스로 단단하게 나를 믿지 않았고, 돈이 부족한 현실에 초조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는

나를 믿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확신이 가득 찬 나

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번 면접을 보고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나'가 아닌 '남'에게 선택되길 바라는 현실을 깨달을 때마다,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점점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결과가 보이지 않는 과정을 1년 동안 걷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 나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괜찮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라고요. 그리고 조급한 나에게 조금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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