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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볼 때 본질을 바라보라

by 아이작 유

본질의 힘


본질.... 우리 호기심 많은 인간은 현상 아래에 숨어 있는 본질을 궁금해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인간은 왜를 묻는다. “분명 근본 원리가 존재할 거야.” “특별한 목적이 존재할 거야.” 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왜 위치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르는가?”를 물었다. 그가 찾은 시간의 본질은 다음과 같았다. 무거운 물체일수록 시공간의 굴곡을 크게 만들어 내기 때문에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측정하는 위치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의 상대성은 공상 과학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는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웜홀을 통과한 뒤 웜홀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밀러’ 행성을 탐사하러 떠난다. 그런데 밀러 행성의 시공간은 그 근처에 있는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에 의해 심하게 뒤틀려 있었고 그곳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에 맞먹는 시간이었다. 이에 쿠퍼 일행은 시간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날렵한 미니 왕복선인 ‘레인저호’를 타고 재빠르게 밀러 행성을 탐사하고 복귀하려고 했다. 하지만 밀러 행성의 초대형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해 3시간을 지체하게 되었고, 인듀어런스에 복귀해보니 23년 4개월 8일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인터스텔라의 장면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시간의 본질은 인간이 우주를 어떻게 바라 봐야 하는지를 안내했다. 인간은 우주를 삼차원 공간이 아닌 사차원 시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블랙홀, 중력파, 우주팽창 등 기존에 상상도 못한 현상을 발견했고 현대 우주론을 만들어 냈다.



한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과학계의 최대 관심은 빛의 본질에 있었다. 1865년 맥스웰에 의해, 빛이란 전기와 자기의 성질을 가진 파동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 인류는 파동이라는 빛의 본질을 제어하기 시작했고 라디오, 전화, 무선통신 등 수많은 현대 발명품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00년, 독일의 막스 플랑크는 온도가 있는 모든 물체가 빛을 낸다는 사실을 발견 했다. 또한 그는 물체에서 나오는 빛을 통해 물체의 온도를 정확히 맞추는 신기한 이론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플랑크는 빛의 에너지가 특정한 값의 정수배로만 존재한다는 매우 특이한 사실을 발표했다. 이는 빛이 파동이 아니라 입자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플랑크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1905년 발표한 광전효과이론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은 X선을 금속에 충돌시켜 발생한 전자의 에너지가 언제나 특정한 값의 정수배로만 존재하는 것 즉, 빛이 입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빛이 도대체 왜 파동의 특성과 입자의 특성을 모두 보이는 것일까?”라는 빛의 본질을 놓고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달려들었다. 닐스 보어, 루이 드브로이,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 에르빈 슈뢰딩거, 폴 에이드리언모리스 디랙 등 수많은 천재들이 이 문제를 해결 하고자 했다. 그 결과 그들은 빛이란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물질이라고 결론지었고 빛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양자 역학을 창조해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메모리, CPU와 같은 반도체나 전자 기기는 바로 이 양자역학의 산물이다.


양자역학 어벤져스라는 별칭을 지닌 사진


위 사례와 같이, 본질에 대한 탐구는 새로운 진보와 혁신을 만들어낸다. 나는 먼저 과학의 사례들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본질을 추구하는 본질주의는 사실 과학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은 철학이다. 그리고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연, 인간, 이성, 신과 같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상을 철학의 재료로 사용했다. 존재하는 것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철학을 할 수 있었기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존재하는 대상이 왜 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물었다.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최초의, 궁극적인, 근본적인, 보편적인, 불변의 본질이 존재하며 이를 이데아(idea)라고 말했다. 플라톤이 바라보기에 모든 것은 본질에서 나오며, 본질에서 나온 모든 것은 본질을 위해서 존재했다. 이런 점에서 본질이란 즉, 플라톤의 이데아란 모든 것의 처음이자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였다. 예를 들어 예술이란 미(美)라는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이데아에서 탄생하는 것이고 예술 작품은 미(美)를 실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눈에는 예술도 종교도 신화도 철학도 국가도 정치도 모두 이데아의 모형이었다. 플라톤의 철학은 바로 이 ‘이데아’ 즉, 본질, 이념,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본질주의적 철학 전통은 이후 이천오백 년의 서양 철학사를 지배했다.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플라톤에 대해 다음의 말을 남겼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본질주의로 세상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


본질주의 철학을 했던 사람들은 만약 우리가 본질을 깨달으면 이 세상의 이치를 알고 이 세상을 잘 살거나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철학에 정통했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였고 무엇을 위하여 움직일 것인가를 물었다. 그는 그 본질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외 쳤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한 그의 노력을 통해 유대교에서 구분된 초대 기독교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그가 정립한 기독교 교리는 중세 유럽 전역을 다스렸다. 근대에 와서, 교회의 세력은 약해졌고, 과학 주의와 계몽주의가 부흥했다. 사람들은 종교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종교의 영역 밖에서 지식을 어떻게 경험하고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신서를 쓰는 사도 바울 (1620)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누구나 동의하고 객관적으로 경험되는 지식이란 왜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칸트는 인간 안에는 경험보다 우선하는 인식의 틀, 인식의 체계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선험적 형식이라 불렀다. 동그랗고 빨간 사과가 당신의 앞에 놓여있다고 하자. 당신은 동그랗고 빨간 사과가 당신의 눈에 정말 동그랗고 빨갛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이 동그랗고 빨간 사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칸트는 그 대상이 실제로 동그랗고 빨간 사과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다만 당신 안에 내재된 선험적 형식이 그 대상을 동그랗고 빨간 사과가 되도록 구성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선험적 형식을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대상을 동그랗고 빨간 사과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붕어빵을 지식이라고 한다면, 붕어빵 틀은 바로 선험적 형식이며 붕어빵 재료는 인간의 경험이다. 붕어빵 틀에 동일한 재료를 넣으면 동일한 붕어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칸트


한편, 칸트는 객관적으로 따르게 되는 도덕 법칙이 왜 존재하는지, 도덕 법칙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칸트에게 도덕 법칙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또는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 법칙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정언 명령’이라 불렀고, 이성적인 인간은 마땅히 정언 명령을 따른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의 철학자 벤담은 도덕 법칙의 본질은 다수의이익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도덕 법칙이다.

벤담


예를 들어 당신이 열차의 기관사라고 하자. 당신의 열차는 철로 A위를 달리고 있으며 철로 A위를 계속 달려 정해진 목적지에 가야 한다. 열차는 곧 철로 A와 철로 B의 분기점을 지나갈 예정이다. 그런데 비상 사태가 발생했다. 분기점 뒤 철로 A에는 열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철로 B에는 3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열차는멈출 수 없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칸트의 정언 명령을 따른다면 당신은 계속 철로 A위를 달려야 한다. 만약 분기점에서 철로 B를 선택했다면 당신은 살인자가 되고 정언 명령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벤담의 공리주의를 따른다면 당신은 가장 적은 사람이 죽게 되는 철로 B를 선택해야 한다.


철학자 헤겔은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 역사의 본질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헤겔은 역사의 개별적인 현상들에 집중 하기 보다는 그 현상들 배후에서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다. 헤겔이 세계 역사에서 발견한 본질은 ‘자유’였다. 헤겔은 자연 세계의 본질이 중력이라면 인간 세계의 본질은 자유라고 말했다. 헤겔에 따르면, 인류 역사란 자유 의식의 진보 과정 곧,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헤겔은 역사의 흐름을인간의생애로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설명했다:


- 유아기(개인과 집단이 구별되지 않은 상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끼지 않음.)
- 청년기(개인과 집단이 구별되기 시작하지만 아직 조화로운 상태에 있음.)
- 장년기(개인과 집단이 분열되며 대립함)
- 노년기(개인과 집단이 대립을 극복하고 의식적으로 통일을 이룸.)


헤겔 철학에 영향을 받은 카를 마르크스는 국가가 산업 혁명을 기반으로 생산성이 극대화되면 모두가 부유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왜 빈곤의 문제가 지속되는지 그 본질을 파고 들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구조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격차가 계속 커지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부의 불평등이 빈곤의 본질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이 하나로 뭉치고 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했다. 그것은 자본가가 소유한 생산 수단을 사회 공유재로 만들어 빈곤이 없는 이상적 사회주의 제도를 세우는 것이었다. 결국 사회주의제도는 전 세계적 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죽고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전 지구의 6분의 1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헤겔과 마르크스



아이작 유

<질문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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