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영 일기 01화

물쫄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바다앓이를 하다가 수영장에 간 사연

by Ronald

바다 앓이의 낌새가 보인 건 5월이었다. 잠깐 서울에 들른 친구들의 마중 겸 배웅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던 날이었는데 긴팔을 입고 있긴 했지만 5월이라기엔 날이 꽤 더웠다. 아직 봄의 끝자락인데 최고기온이 벌써 28도까지 올라가다니, 집으로 오는 공항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손부채를 파닥거리다가 나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문득 작년 여름 SNS상에 떠돌던 폭염 속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구입하러 가던 불인간들의 짤이 생각났다. 그때는 너무 웃기다며 단톡 방에 그 사진을 공유하기 바빴는데 이제 그게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 이상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5월부터 이러면 7, 8월에는 어쩌지... 작년엔 진짜 더웠다던데 올해도 비슷한 수준이려나'하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Balmoral beach, NSW, Australia

7월이 되었고 역시나 더워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폭염 주의보가 발효될 때마다 시드니에서 자주 가던 바다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해변에 도착하면 적당한 자리에 비치타월을 깔고 서둘러 바다로 뛰어나가 차가운 물이 몸에 닿았을 때의 짜릿함과 몇 차례 물을 끼얹은 뒤 바다에 온몸을 내던졌을 때의 시원함이 그리웠다. 바다, 바다, 바다. 나는 바다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바다앓이를 하던 중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해결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바다는 너무 멀었고 지속적인 물놀이를 위해 나는 결국 동네 수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참에 수영...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바다에서 주로 튜브나 부기 보드 타기를 좋아하고 바닷속에 머리를 집어넣을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지만 스노클링을 한없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릴 적에 수영을 배우긴 했으나 홀랑 까먹어 바다 한가운데서도 구명조끼 없이 뛰어드는 외국인들을 오랫동안 동경해온 이력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수영을 할 줄 안다면 물속에서 더 자유롭게 놀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겨났고 동네 주민센터의 수강 신청일이 되자마자 나는 부랴부랴 센터를 찾아가 초급반 등록을 시도했다. 물쫄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함과 설렘으로 그렇게 8월을 맞았다.




수영 강습이 시작된 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첫째 날에는 음파 음파 숨쉬기와 발차기, 둘째 날엔 사이드킥, 그리고 옆으로 숨쉬기와 스트로크 동작까지 강습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고 매번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새로운 동작을 배우는 시간이 이어졌다. 배운 동작들이 쌓여갈수록 초반부에는 복습, 후반부에는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는 것으로 강의가 구성되었다. 50분의 시간 동안 레인을 몇 차례 오가는 것으로 과연 좋아질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새 실력은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나아졌다. 길이가 짧은 어린이풀은 단시간에도 여러 바퀴를 돌 수 있는데 우습게도 짧은 레인을 한두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까지 차오르곤 했다. 이러다 심장이 터지는 건 아닐까 매번 우려했지만 당연히 아직까지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죽을 것 같은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숨을 참다 보면 거짓말처럼 숨이 더 참아졌고 처음에는 시작점부터 끝까지 4~5번의 숨쉬기가 필요했는데 연습을 하다 보니 그 횟수가 어느 순간 3번으로 줄어들었다. 정말 단시간에 폐활량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발차기와 스트로크 연습이 빛을 발한 것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실력 향상에 수업 도중에 혼자 내적 댄스를 춘 것도 꽤 여러 번이었다. 고작 4번의 수업으로 속단하긴 이르지만 이제까지 내가 느낀 수영의 묘미란 인풋과 아웃풋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나는 아웃풋에 열광하는 인간이다.


수영의 즐거움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무언가를 처음부터 배운 게 오랜만이라 혹은 ‘힘들면 그만두지 뭐’라고 조금 느슨한 마음에서 부담 없이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둘 다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새로운 동작을 계속, 착실히 배워볼 참이다. 즐거운 이유를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하진 못 했지만 계속하다 보면 어떻게든 실력은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나아진 실력만큼 나는 즐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간에는 또 어떤 걸 배우게 될까 호기심을 품은 채 5일 차 수영인은 오늘도 수영장으로 향한다. 부디 오늘은 물을 덜 먹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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