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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IMI Apr 15. 2019

인도 여행 07. 영악한 소년 가이드, Mohit

2019. 1. 13.

사르나트를 다녀온 후 An과 헤어지고 호텔 앞 푸쉬카르 가트에서 연 날리는 소년들을 구경하다 Mohit와 만났다. 12살의 Mohit는 상당히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고 한국을 알고 있는 매우 적극적인 성격의 아이다. 매우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며,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호텔 뒤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Mohit의 집에 들어서니 저녁을 만들던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 준다. 어색했지만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2층의 자신의 방으로 안내한다. 크리켓 선수가 되고 싶다면서 크리켓 타격 자세를 알려준다. 야구와 비슷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크리켓은 영국과 과거 영국식민지였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구기 종목으로 인도에서는 그 인기가 매우 높다. Mohit는 500루피짜리 크리켓 배트를 사고 싶다면서 바라나시의 사원과 가트를 450루피에 안내를 해 주겠다고 한다. 흔쾌히 동의하는 사이에 어머니가 짜이를 가져온다. 파하르간지에서 먹은 짜이는 전지분유 맛이라 그동안 마시지 않았지만, 이번 짜이는 진한 쑥향의 풍미가 느껴진다. 

Mohit는 형이 입원하고 있는 바라나시 힌두 대학(Banaras Hindu University) 병원에 가자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친절을 보여 나의 가이드를 하고 싶은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 역시 힌두 대학이 궁금했던 터라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하였다. 

가던 길에 브라만 학교(Brahma Veda Vidyalaya)로 안내를 한다. 자신은 브라만이고, 토요일은 외부인도 들어갈 수 있다며 당당하게 앞장을 선다. 호텔 길목에 있어 궁금했던 차에 냉큼 따라 들어갔다. 널따란 마루에는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20여 명이 앉아 경전을 공부하고 있다. 정수리 부분에 꽁지머리를 남겨두고 모두 짧게 밀어 버린 머리 스타일과 이마에 그려진 시바의 삼지창이 매우 독특하다. 마루에 앉으라고 하는 아이들의 손짓에 따라 어색함을 숨기고 그들 곁에 앉으니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브라만 아이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길을 나섰다. 

낮보다도 훨씬 혼잡하다. 비슈와네트 사원(Kashi Vishwanath Temple)으로 유명한 힌두 대학(BHU)의 넓이는 여의도의 1.8배에 달한다. 30,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캠퍼스에 거주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주거 대학교라고 알려져 있고, 자체 경찰, 병원, 우체국, 은행, ATM, 주유소, 학생들을 위한 버스 시설 등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서 양쪽으로 15개의 침대가 있는 복도 형태의 매우 크고 긴 방을 몇 개 지나니 Mohit의 형이 입원하고 있는 침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 그의 부모님이 와서 음식을 주고 있었다. 형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어 며칠 뒤에 퇴원한다고 한다. Mohit의 아버지는 브라만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매우 점잖은 분이다. Mohit는 아직 어린이라서 그런지 자신의 브라만 계급이라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특별한 인도 경험을 만들어 준 Mohit가 매우 고마워 함께 치킨커리로 저녁을 함께했다. 


고마운 것은 딱 어제까지였다.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돈이 생길 기쁨에 오늘 아침부터 왓츠앱(WhatsApp)으로 보내진 여러 차례의 메시지와 전화벨은 오늘도 어김없이 창문을 두드리는 까마귀와 함께 평화로운 아침을 깨고 있었다. 호텔 앞에서 만난 Mohit는 1시간에 500루피의 가이드 비용을 준다고 약속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에게 용돈을 주겠다는 마음에서 「1Day, 450루피」로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인데 실망스럽다. 노동자들의 일당이 300루피 정도인 것을 생각할 때 큰돈이다. 어제 한 약속을 기억 못 할 정도가 아닌 나에게 장난질을 하는 Mohit가 괘씸하다. 단호하게 450루피가 아니면 가라고 하니 따라나선다. 쫓아 보내고 싶기도 했지만, 가이드 내용을 노트에 꼼꼼히 정리해 온 성의를 봐서 사원 투어를 시작했다.


충성심의 상징, 하누만 사원  Sankat Mochan Hanuman Temple

처음으로 찾은 곳은 하누만 사원이다. 몽키 템플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람차르트마나스(Ramadaritamanasa)의 저자인 툴시다스(Tulsidas)가 16세기 초에 하누만과 라마를 숭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하누만은 인간이 원하는 것을 빨리 얻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원숭이 형상의 신이다. 매우 강력한 시바의 아바타로서 비슈누의 7번째 아바타인 라마를 헌신적으로 도와 충성심의 상징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악을 막아주는 보호자로 믿고 있다. 

사원은 보안상의 이유로 휴대 전화나 가방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2006년 바라나시에서 무슬림에 의해 자행되어 23명이 죽은 폭탄테러 장소 중 한 곳이지만, 50여 미터 떨어진 본당까지 가는 길에는 커다란 나무들과 원숭이들이 많아 평화로운 푸른 숲속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신발을 맡기고 맨발로 본당의 신상을 구경하면서 그들의 경배 방식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대개 오른손을 자신의 이마와 가슴에 대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린다. 하누만은 매우 자극적이며 화려한 노랑, 주황, 흰색의 메리골드 꽃 화환으로 장식되어 있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처럼 정성을 다하는 그들에게 행복이 꼭 함께하길 기원해본다. 

살만 칸 주연의 카쉬미르의 소녀(2015)
https://m.timesofindia.com

Mohit는 하누만을 제일 좋아한다. 히말라야의 산으로 날아가서 통째로 약초의 산을 옮겨와 라마의 군사들을 치료해주고, 인도와 스리랑카 해협을 한 번의 도약으로 건너기도 한 하누만의 무용담을 매우 진지하게 설명한다. 근두운을 타고 여의봉을 휘두르면서 요괴를 무찔렀던 손오공의 활약상이 재미있어 여러 번 서유기를 읽었던 어릴 때 추억을 생각하면 왜 Mohit이 하누만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손오공은 도술을 마음껏 부리는 소설 속의 원숭이이지만, Mohit에게 하누만은 신성한 시바의 화신이다.     


진리의 신 라마, 마나스 사원  Tulsi Manas Mandir

다음으로 찾은 곳은 하누만이 충성을 다했던 라마에게 헌정된 마나스 사원이다. 흰색 대리석의 건물과 잘 꾸며진 정원으로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이다. 코살라 왕국의 장남으로 태어난 라마는 종교적 가치와 의무인 다르마를 지킨 인물로 존경받으며 비슈누의 일곱 번째 아바타로 간주된다. 자신의 아내인 시타(락슈미)가 악신으로 일컬어지는 아수라에게 납치당하자 하누만이 이끄는 원숭이 부대와 함께 싸워 이기고 왕이 된다. 

이 사원은 16세기 힌두 시인이자 철학자 툴시다스의 라마 일대기를 그린 서사시 람차리트마나스가 1층의 벽면에 쓰여 있어서 역사적ㆍ문화적 의미가 크다. 2층에는 라마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움직이는 인형으로 표현하고 있는 코너들로 가득하다. 라마에 관해 읽은 적이 있어 이야기의 전개 과정을 대충 이해할 수 있지만, 힌두교의 세계관을 전혀 인정할 수 없고 기계적인 장치들이 헛웃음을 일으킬 정도로 유치하여 대충 지나가는 정도이다. 하지만, 라마를 대하는 태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공손하고 정성스러운 인도인들에게 눈길이 간다. 

라마와 시타. https://global.rakuten.com
하누만의 가슴 속에는 항상 라마와 시타가 있다.

부정적인 것을 파괴하는 두르가 사원 / Durga Temple


전쟁의 여신, 두르가 사원  Durga Temple

근처에 있는 두르가 사원은 붉은 색조의 건물들로 이목을 끈다. 두르가는 시바의 아내 파르바티(Parvati)의 화신이다. 붉은색의 옷을 입고 손에는 신들의 무기를 들고 호랑이를 타고 있는 전쟁의 여신으로 묘사된다. 부정적인 것을 파괴하고 어려움과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주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도가 높다. 

18세기에 지어진 이 사원의 안마당은 최고의 핵심적인 성소로서 포탄 형태의 뾰족한 탑인 시카라(Shikhara)가 사각형의 회랑 형태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건물들이 모두 두르가를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모습이 꽤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두르가 여신상이 있는 시카라 앞에서 신자들이 기도문을 외우고 봉헌을 하는 모습들도 흥미롭다. 두르가 여신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원을 건립한 후 스스로 나타났으며, 사원에 머물면서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를 악으로부터 보호했다고 한다. 하누만 사원처럼 입장료가 없으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매우 인도다운 사원을 구경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두르가 https://global.rakuten.com


해탈을 위한 비슈와나트 사원  KashiVishwanath Temple

바라나시에 가장 유명한 사원인 골든 템플 또는 시바 템플이라고 부르는 비슈와나트 사원로 가는 도중에 릭샤 왈라의 소개로 500루피(7,500원)짜리 인도 의상인 구루마를 사게 되었다. 두 배 정도의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디자인과 재질이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 하지만, 무려 다섯 배의 바가지를 썼다는 것을 그와 헤어진 뒤 10여 분 뒤에 알게 되었다. 어이가 없다. 상점을 찾아가 환불을 요청하려고 하다가 「거래는 거래일 뿐」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에 그냥 시바 사원으로 향했다.

1780년, 화장터인 마르까르니까 가트 근처에 세워진 비슈와나트 사원은 시바에게 바쳐진 곳으로, 사원을 방문하고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일은 모크샤(해탈)로 이르는 중요한 단계라고 알려져 인도 전역에서 힌두교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그래서인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좁은 길목에는 사원에 들어가려는 수백 명의 신자가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갈 볼만한 곳이라고 해도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Mohit의 얼굴을 보니 긴장된 표정이다. 뭔가 감이 좋지 않아 라면이라도 같이 먹을까 했던 생각을 접고 다사스와메드 가트까지 왔다. 나의 눈치를 보던 끝에 시계를 보더니 이미 약속한 반나절이 끝났고 다시 반나절의 가이드를 원하면 500루피를 더 줘야 한다고 한다. 어린아이라 순수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Mohit에게 다시 「1day, 450루피」라고 상기시키면서 500루피를 주면서 집에 가라고 했다. 점심을 함께하고 보낼 생각이었는데 씁쓸하다. Mohit는 겸연쩍어하면서도 집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보수를 더 달라고 한다. 웃으면서 그냥 가라고 손짓하고 철수카페로 향했다. 크리켓 배트를 사고 싶은 어린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된 가이드 투어는 이렇게 좋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어제부터 Mohit에게 1,000루피 정도 지출되었으나 아깝지는 않다. 관광객이 쉽게 가볼 수 없는 브라만학교와 힌두 대학 병원 입원실을 경험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함께 해서 심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Mohit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영악하고 맹랑한 인도 소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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