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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Feb 14. 2018

어떻게 작가가 됐냐면은,

우연히 혹은 간절하게

"작가님은 참 운이 좋으시네요."


그랬나....내가 운이 좋은 사람인가....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드라마 제작자가 나의 영화 시작 이야기를 듣다가 저 말을 하길래, '아닌데...나도 고생 많이 했는데...'속으로 삐죽해하던 기억이 난다. 운이 좋다는 말이 마치 '백이라는 총량'에서 노력을 깎아 먹은 것처럼 들렸나 보다. 노력은 노력이고, 운은 운인데......고생을 훈장처럼 여기라는 젊은이들을 향한 '으른들의 말장난'에 나도 속고 있던 시절이다. 아무렴, "에효....작가님은 운도 참 더럽게 없으셨네요." 소리나 듣는 것 보다야 훨씬 낫다. 아니, 좋다.


영화나 드라마의 작가가 되려고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그 '작가'가 되는 것이다. 습작이 많다고 해서 여러 영화사와 작업을 했다고 해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기지는 않는다. (아니 그럼, 타이틀이 없으면 작가가 아닌가? 타이틀만 달았다고 다 작가인가?!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오피셜한 포지셔닝의 의미다. 오해 없으시길) 작가들에게는 '데뷔', 이른바 '입봉'의 턱을 넘는 것이 최대의 과제고 숙젠데, 이게 대학교 조별 과제 같은 거라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하다 보니 예기치 않은 골치가 생기고, 내 몫만 마쳤다고 완성이 아니라는 거다.

입봉에 이르는 일반적인 루트랄까, 그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여러 방식 중의 하나 일 뿐, 알고 보면 다 다르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나 역시 일반적이면서 다르게, '입봉'을 하게 됐고, 그 '다른'면에서는 '운이 좋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공모전에 당선되고 한동안 전화기만 쳐다봤다. 나처럼 전공자도 아니고 관련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 작가 지망생에게는 공모전 당선만이 낙타가 통과해야 할 바늘구멍의 유일한 바늘귀라 할 수 있는데, (적어도 나는 딱 거기까지만 알았다.) 그 바늘구멍을 통과했으니 '와-이제 됐다'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프리패스를 손에 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군데도 없었다. 한 군데 있긴 있었는데, 관심 가는 신인 작가의 인터뷰가 나왔으니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아 연락을 해 온, 발 넓은 영화 프로듀서였다. (프로듀서의 역량은 그런 것인지 몰라도, 과연 영화 일을 하면서 만난 모두가 그분을 알고 있었다. 발이 넓다 정도가 아니라 새기는 걸음걸음이 인연의 족적이랄까.) 공모전 하나만 보고 왔는데, 그 산을 넘으니 마을이 아니라 절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누가 갖다 붙인 말인지 몰라도 지.망.생.신.분.일 때 보다, 누가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볼 때 보다, 자격지심에 집에서도 옷을 갖춰 입고 화장까지 하고 출근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던 그 시절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두렵고 암담했다.



이제 더 뭘 해야 하지....나보고 뭘 더 어쩌라고......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드라마 제작사의 연락을 받았고, 무려 '생각해 보겠습니다.'라는 기가 찬 대답을 날린 후, 한 달여를 고민하다가 그곳에 들어갔다. (다들 내가 그 소리한 걸 '뻥'인 줄 아는데, 지나고 생각하니 나도 등골이 서늘하다. "생각해 볼 거면 됐습니다."라고 안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모전을 통해, 관련 전공을 하며 틈틈이 갖춰진 인맥 혹은 추천으로, 단편영화가 눈에 띄어서 등등. 그중 '제본한 시나리오를 봉투에 담아 보냈더니 대표에게 영화로 만들자며 연락이 왔더라....'하는, 전설 같은 얘기의 생존 인물까지 본 적도 있으나, 말 그대로 '그땐 그랬지'다.

이렇게까지 늘어놓고 '케이스바이케이스여!' 라고 퉁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정말 그렇다. 참신함은 없어도 자주 쓰이는 막연한 노래 가사처럼, 작품의 '인연'을 만나는 거라고 밖에......(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이다.)


'취향의 차이'일뿐 '정답'은 없는 일이라서, 작품의 성향을 같이하며 진행 능력을 갖춘 제작자나 프로듀서를 만나라는 것이 최선 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그놈에 '인연'이 더해지면.......그러기 위해선 일단, 써야 된다. 쓰고 나서 어디에든 손을 들고, "나 여기 있어요!"라고 하면 어디선가 '인연'이 나타나서......아무튼 일단 쓰고 얘기합시다!!


사실, 요즘 내가 나한테 제일 많이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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