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었다.
눈이 꽤나 오던 그해. 겨울.
나는 두 번째 직장이자, 모교인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대로 눌러앉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 그리고 좀처럼 변화가 없는 주변 환경들.
(이를테면, 사무실 흡연이나, 부서장의 갑질, 여직원이라 타야 하는 커피 등등.)
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 퇴직까지 남은 두 달 남짓.
학교에 있는 언어교육원 영어회화반에 등록했다.
나는 영어를 따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
그리고 대학에 와서 읽었던 원서로 된 전공서적들. 그게 내가 했던 영어공부의 전부였다.
회화반 수업의 첫날.
각자 소개가 이어졌다.
학부생도 있고, 대학원생도 있고, 중국인 유학생도 있고, 교내 벤처타운에 입주한 기업의 직원도 있었다. 그 외에 학교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지역주민도 있었고, 다만 서른을 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반에서 가장 연장자는 집이 근처인 회사원이었다.
수업은 출근 전 아침시간이었다.
한 시간씩 일찍 서둘러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봤던 친구를 버스에서 만났다.
큰 키에 훤칠한 인물. 누가 봐도 잘 생겼다고 할 만한 외모다.
바로 옆 동네에 산다고 했다. 교내 벤처타운에 입주한 IT 기업의 직원 T였다.
T의 친구 E가 대학원생이어서 함께 회화수업을 듣자고 했다고 한다.
나보다 한 살 어리고, 비슷한 일을 하니, 금세 얘기를 나누기가 어렵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에 살짝 김이 샜다.
회화수업의 선생님은 캐나다 교포출신으로 늘 반팔을 입고 있었다.
안 되는 영어로 짝을 지어 대화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이렇게 해서 회화가 될까 싶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한 달, 두 달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시간 되는 사람들은 저녁에 따로 약속을 잡아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차를 마시며 얘기도 나누고.
20대의 우리들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연애얘기, 학업얘기, 진로얘기,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고,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고민에 함께 걱정해 주고, 안 좋았던 일에 함께 분노해 주었다. 특히 나는 잘생긴 직장인 T의 친구인 대학원생 E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직전의 학부생 Y, 내 동생과 같은 학과에 재학 중인 동생의 친구 C와 종종 만났다.
4년 반을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만큼, 아픔도 클 줄 알았는데, 사실 헤어지고 나니, 헤어짐의 아픔보다 지난 시간의 아쉬움이 나를 덮쳤다.
내가 그동안 너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게 아닌지. 매번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왔고, 그저 안주하려고만 했던 내 모습이 자꾸만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어학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맥주 한잔 하며 긴긴 얘기를 하고 나오던 중.
Y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얘기한다.
"누나, 꼭 우리 작은 누나 같다. 그래서인지 편해. "
"그래? 난 남동생은 없어. 네가 남동생 해라."
며칠 뒤, Y는 쪽지와 과자 몇 개 담긴 간식봉지를 들고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누나, 저번에 엑셀 가르쳐 준거 고마워."
Y가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엑셀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IT 전공자인 내가 몇 문제를 봐준 적이 있었다.
사실 나도 엑셀은 잘 모르지만, 함수 같은 부분은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시험은 잘 봤어? "
"아니, 떨어졌어. 다음에 다시 보려고."
별 도움이 안 됐네. 그래도 고맙다고 찾아와 주니 나도 고마웠다.
Y가 또 보자고 한다. 만날 날이 되었는데, 그날은 어쩐지 바깥 날씨도 너무 춥고, 눈까지 내리니 너무 나가기가 귀찮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해 본다.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못 가겠어. 미안해."
"알았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Y는 미리 약속장소에 가 있어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약속을 잡았다.
분식집에서 우동과 떡볶이를 먹고, 영화를 봤다.
어째서 그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때 상영하던 영화 중에서 공포도, 액션도 싫어하던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봤던 영화는 "프라임러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