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7년 전 우리는 한 시사잡지사에서 인턴기자로 만났다. 인턴 교육의 일환으로 가산에 있는 인쇄소로 향하는 날이었다. 나란히 걷게 되어 자기소개 비슷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취미가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말엔 일본 드라마 보면서 시간 보내요."
나는 이미 교환학생으로 간 요코하마에서 1년을 지내고 돌아온 뒤였고, 그는 인턴이 끝나고 도쿄로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었다.
매일 저녁마다 있던 술자리, 어려운 선배들, 서툰 글솜씨,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하얀 지면, 어색한 만남들....... 고된 하루가 이어지던 가운데 그는 일산에 사는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 시작했다. 지하철 3호선 양끝에 살며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하던 우리. 하루에 고작 다섯 시간 정도 주어진 수면시간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내며.
7년이란 시간이 우리를 더욱 닮게 만들었던 것 같다.
판에 박힌 것을 못 견뎌하고, 남들 앞에 나서길 싫어하고, 겉치레를 비웃었다.
올해 가을은 유난히 결혼식이 많았다. 9월과 10월 매주 토요일 낮시간을 예식장, 호텔로 향하는 꽉 막힌 길 위에서 보냈다. 일찍 나간다고 나갔는데 매번 지각을 하며... 마음 한 편에 귀찮단 마음을 안고 있음이 죄스러웠다.
토요일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요일이다.
서울을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깨에 뭉친 근육을 풀어내고, 깨끗한 공기를 마셨다. 역사의 한 자락을 보고 돌아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정리했다. 7년 내내 토요일을 이렇게 보내왔다. 두 달 정도 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은 우리의 결혼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도 결혼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일 '여행'을 하듯이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나와 결혼할 사람은 ‘우리의’ 결혼식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행하듯,
우리가 주인공인
결혼식.
장소와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알아보곤 절망했다. 시골 학교를 빌려 작은 결혼식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하기엔 두 달 안에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특히 성질이 급해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빨리 하고 싶었다. 작은 결혼식 전문업체도 많았지만, 규모를 줄일 순 있어도 비용은 작지 않았다. 시간과 돈. 둘 다 넉넉하지 않은 우리에게 '작은 결혼식'은 사치였다.
왠지 시골학교에서 하게 되더라도, 소규모 웨딩홀에서 해도 식은 점점 부풀어 오를 것 같았다. 우선 우리 집은 친척이 많다. 매년 설과 추석 때 5촌 아저씨, 6촌 언니, 오빠들까지 왕래한다. 그는 직업 특성상 회사 동료, 업무관계 지인이 상당히 많다. 친구도 많다. 누구까지 초대하고 누구까지 안 부르겠는가. '5촌 이하, 최근 6개월 이내 만난 적이 있는 사람만 오세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한 가운데 '일본도 우리처럼 결혼을 하던가?' 야후 재팬에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작은 결혼식'이라는 이름의 식장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일본 전국에 지점이 있고, 식을 올리는 데 6만 7천 엔(약 68만 원)이면 된단다!
6만 7천 엔 안에 드레스, 턱시도 대여, 신부 헤어 메이크업, 대관료, 사회자, 사진 한 장 촬영이 포함.
일주일 전에 연락해도, 식장이 비어있다면 결혼식 가능.
둘이서만 식을 올려도 OK,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리고 식을 올릴 수도 있음.
그리고 작년 겨울,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낸 홋카이도에도 식장이 있음.
문의하기에 글을 남겼다.
“외국인인데 이곳에서 결혼식 할 수 있나요?”
그렇게 우리는 시간과 돈도 풍족하지 않으면서 해외 결혼식을 감행하기 시작했다.